갤러리현대 개관 50주념 기획展 '한국 근현대인물화-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
韓 최초의 누드화, 김관호 '해질녘'·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등 71점 전시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전람회에 진열된 김군의 그림은 사진이 동경으로부터 도착하얏스나 녀인의 벌거벗은 그림인고로 사진으로 게재치 못함."


1916년 10월20일 매일신보 기사의 맨 끝에 괄호를 쳐서 사족처럼 덧붙인 글이다. 평양 태생의 조선 화가 김관호가 일본에서 열린 '제10회 문부성미술전람회' 출품작 '해질녘'으로 특선에 입상했다는 소식을 전한 기사다. 100여년 전 나체라는 점 때문에 차마 신문에 싣지 못한 그림을 지금 서울 종로구 현대화랑에서 볼 수 있다.

갤러리현대가 개관 50주년 기념으로 야심 차게 마련한 기획 전시 '한국 근현대인물화-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을 오는 3월1일까지 연다. 구관 현대화랑과 신관 갤러리현대 건물에 54명 작가의 인물화 71점을 전시한다.


구관 현대화랑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127.5×127.5㎝의 그림이 '해질녘'이다. 왼쪽 벽면을 홀로 가득 채우고 있다. 평양 능라도 강가에서 씻는 나체의 두 여인의 뒷모습을 그렸다. 적당히 오른 살집에서 푸근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김관호 '해질녘', 1916, 캔버스에 유채, 127.5x127.5㎝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김관호 '해질녘', 1916, 캔버스에 유채, 127.5x127.5㎝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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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자문을 맡은 목수현 미술사학자는 "아마도 한국 사람이 그린 최초의 누드화일 것"이라며 "이전에 습작으로 그린 누드화는 있을 수 있겠지만 완성된 작품으로는 최초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관호는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에 이어 두 번째로 도쿄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학)에서 공부한 조선 화가다. '해질녘'은 현재 도쿄예술대학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갤러리현대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대여했다.


우리의 근대미술은 어쩔 수 없이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도입·시작됐다. 일본에서도 특히 도쿄미술학교가 조선인 서양화가를 많이 배출했다. 1945년 광복 전까지 도쿄미술학교가 배출한 조선인 화가는 43명이다. 당시 도쿄미술학교에서는 졸업 작품으로 자화상을 제출해야 했다. 그 43명의 자화상 가운데 작품 5점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해질녘'의 오른편으로 전시된 고희동, 김관호, 이종우, 김용준, 오지호의 자화상이다.

'한국 근현대인물화-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 전시 전경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한국 근현대인물화-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 전시 전경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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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는 '해질녘'을 이번 전시 도록의 뒤표지 그림으로 사용했다. 앞표지는 천경자 화백의 1978년 작 '탱고가 흐르는 황혼'이 장식했다. 신관 갤러리현대 1층에서 볼 수 있다.


천 화백은 뱀을 많이 그렸다. 뱀 35마리가 똬리를 틀고 엉켜 있는 그림 '생태'는 1952년 공개돼 화단에 충격을 던졌다. 1977년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여인의 머리 위에 얹혀 있는 뱀 4마리를 표현하고 있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에서는 뱀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인이 말아올린 머리의 형태와 내뿜은 담배 연기가 뱀을 형상화한 듯하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은 천 화백이 1995년 출간한 수필집 제목으로도 쓰였다.


이응노 화백이 1946년 그린 '거리풍경-양색시'도 눈길을 끈다. 당시 미군을 상대하던 짧은 치마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 화백은 그림 오른쪽 아래에 "바라볼 때에 눈물이 앞을 가리워마지 않노라. 빨리 반성하야 새옷을 벗고 직장으로 직장으로, 제이국민의 현모가 되어주기를 바라노라"라고 썼다.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 종이에 채색, 46.5x42.5㎝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 종이에 채색, 46.5x42.5㎝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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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거리풍경-양색시', 1946, 한지에 수묵담채, 50x60㎝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이응노 '거리풍경-양색시', 1946, 한지에 수묵담채, 50x60㎝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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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현대는 '한국 근현대인물화-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 전시로 한국 근대미술에서 현대미술로의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1910년대부터 100여년에 걸친 시대정신도 구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화가가 살던 당시의 삶이 반영된 '당대성'에 주안점을 둔 작품들을 선별했다.


독특한 느낌의 작품이 적지 않다. 이인성의 1934년 작 '가을 어느 날'과 이쾌대의 1948년작 '군상 Ⅲ'이 그렇다. 이인성은 조선미술전람회의 스타 작가였다. '가을 어느 날'은 제15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한 작품이다. '해질녘'의 반대편 벽면에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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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는 6·25 때 인민의용군으로 참전했다 포로가 돼 휴전을 맞이했다. 하지만 남북 포로 교환 때 자의로 북한을 택해 넘어갔다. 그러던 중 1988년 월북 화가들의 작품이 해금 조치되면서 이쾌대의 작품도 햇빛을 보게 됐다.


여인들 그림 중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 많다. 권옥연의 1951년 작 '페허에서'에는 해바라기 한 송이를 들고 한쪽 가슴을 드러낸 채 턱을 괸 여인이 그려져 있다. 다소 도발적인 그림 속 여인은 당시 신혼이던 권옥연의 부인이다. 김인승의 '욕후의 화장'은 속옷 입은 여성이 목욕 후 화장하는 모습을 그렸다. 서울옥션 경매에서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던 작품이다.

이인성 '가을어느 날', 1934, 캔버스에 유채, 96x161.6㎝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이인성 '가을어느 날', 1934, 캔버스에 유채, 96x161.6㎝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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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 '군상3', 1948, 캔버스에 유채, 151x128㎝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이쾌대 '군상3', 1948, 캔버스에 유채, 151x128㎝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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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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