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날엔…] 김종인의 ‘정무적 판단’…이해찬 공천 배제의 속사정
민주당, 20대 총선 세종시 공천 논란…이해찬 무소속 후보로 출마, 김종인 퇴임 후 민주당 복당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전체 선거 구도상 정무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2016년 3월14일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종인 대표는 ‘친노(친노무현계) 좌장’으로 불렸던 이해찬 의원의 공천 배제를 결정했다. 20대 총선을 흔들었던 주요 사건 중 하나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는 이해찬 대표. 그는 가장 최근 총선인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 민주당 간판으로 선거에 나설 수 없었다. 김종인 대표가 공천 배제의 사유로 들었던 ‘정무적인 판단’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주장이다.
전체 선거 판도를 승리로 이끌고자 희생양이 필요했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공천 개혁’으로 불리는 물갈이는 정적 제거를 위한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다. 특정 정치인 또는 세력이 공천에 과도한 개입을 하게 된다면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천 칼춤’은 정치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20대 총선 1년 전만 해도 이해찬 의원이 민주당이 아닌 다른 간판으로 선거를 치를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해찬 의원의 공천 배제 결정은 민주당을 부글부글 끓게 만들었다. 총선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이다. 잠복해있던 계파 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였다. 친노 진영에서는 해묵은 친노vs비노 갈등을 김종인 대표가 다시 점화했다면서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당시 공천 배제의 대상 중에서는 박근혜 정부와 각을 세우며 대여 투쟁의 선봉에 섰던 인물들이 다수 포함됐다. 정청래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의원들도 공천 탈락의 아픔을 겪었다.
김종인 대표의 공천 칼춤을 지켜보면서 ‘사천(私薦)’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사건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해찬 의원과 김종인 대표는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 국회의원 후보로 격돌한 바 있다.
당시 이해찬 의원은 평화민주당 후보, 김종인 대표는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했다. 이해찬 의원이 31.18%를 득표해 27.12%를 얻은 김종인 대표를 누르고 당선됐다. 2016년 김종인 대표의 이해찬 의원 공천 배제를 놓고 1988년의 선거 패배에 따른 앙금이 남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2016년 3월15일 이해찬 의원은 탈당 선언문을 통해 “잠시 떠난다”는 뜻을 전했다. 민주당을 나와 무소속으로 정치적인 승부를 본 뒤 친정으로 돌아오겠다는 메시지다.
이해찬 의원 입장에서 억울한 점은 당 지도의 요청에 따라 19대 총선 때 세종시 출마를 결정했고 당선됐는데 ‘정무적인 판단’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근거를 들어 공천 배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해찬 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선택하자 김종인 대표는 예상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종인 대표는 2016년 3월15일 ‘직장인과의 대화’ 행사를 끝낸 뒤 “본인이 탈당해 출마하면 본인의 자유인데 뭘 그래요”라고 말했다.
김종인 대표는 이해찬 의원 지역구인 세종시에 민주당 후보를 출마시키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친노 좌장으로 불린 이해찬 의원이 자신이 몸담았던 소속 정당 후보와 경쟁하게 되는 그림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해찬 의원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기존 정당 조직을 바탕으로 선거에 임하기 때문에 조직력 측면에서 무소속은 불리했다. 게다가 탈당의 여파로 새누리당이 어부지리 승리를 거둘 경우 정치적인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세종시는 제20대 총선의 핵심 관심 지역구로 떠올랐다. 개표 결과 민주당 세종시 총선 후보의 득표율은 10.59%에 머물렀다. 최종 득표율은 무소속 이해찬 후보 43.72%, 새누리당 박종준 후보 36.04%로 나타났다. 이해찬 의원은 살아 돌아왔다.
당시 민주당은 원내 제1당이라는 성적표를 냈다. 김종인 대표는 선거 승리를 이끌었지만 세종시 패배는 뼈아픈 결과였다. 이해찬 의원은 선거 결과와 관련해 “김종인 대표의 잘못된 정무적 판단보다 세종시민의 정무적 판단이 훨씬 현명하고 옳았다”고 평가했다.
이해찬 의원은 당선 직후 민주당 복당 의사를 분명히 했다. 4월19일 당에 복당 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김종인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복당에 대한 판단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6년 8월27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추미애 대표가 당선되고 김종인 대표가 물러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내 투자금 손실 나도 정부가 막아준다"…개미들 ...
민주당은 2016년 9월19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해찬 의원의 복당을 결정했다. 당시 우상호 원내대표는 “작은 통합으로 시작해 큰 통합으로 이뤄질 때까지 민주당이 추진하는 통합이 수권정당으로서 정권교체의 희망을 높이는 신호탄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