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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검찰의 시간과 벌새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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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검찰의 시간과 벌새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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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처의 장관 자리를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사실 확인 없이 도배되는 뉴스들, 무분별한 폭로전으로 점철된 날들. 원칙과 일관성에 근거한 임명권자의 결단으로 주사위는 던져졌지만 검찰의 유례없는 표적수사로 인한 광풍은 여전하다.


이 사나운 바람이 어떻게 잠재워질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다음 사실은 분명하다. 검찰개혁의 필요성이 시대적 소명으로 대두된 것. 이 혼란은 조국 지키기 혹은 무너뜨리기라는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온당한 법 원칙 위에서 검찰개혁의 소명을 완수할 장관의 역할과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 이에 더해 언론개혁, 교육개혁, 정치개혁이라는 중차대한 과제 또한 온 국민에게 뼛속 깊이 각인된 것 말이다.

1948년 발족한 대한민국 검찰은 그간 누려온 무소불위의 권력만큼이나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여럿 얻었다. 정치검찰, 떡검, 섹검, 스폰서 검사, 최근에는 검개라는 이름으로도 회자되는데, 열심히 일하는 검사들에게는 억울할지 모르나 검찰이 주어진 권력을 작위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에 국민들이 염오를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잘못이 있으면 수사와 재판을 거쳐 판결하면 되는데 무죄추정 원칙을 무시하고 현재 검찰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 인권침해의 양상은 검찰의 시간이 시대에 맞지 않게 거꾸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간 검찰은 남성적인 패거리 문화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이미지와 겹쳐 생각되었다. 정의를 실현한다는 검찰의 자부심이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한 이유는 공평하지 못한 법 집행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편파적으로 행하는 수사권과 기소권, 무책임한 언론과의 공모로 인해 검찰은 선택적인 정의와 무자비한 징벌의 주체가 되었다. 검찰이 마음먹으면 누구나 순식간에 엄청난 범죄자가 된다. 힘겨운 재판을 거쳐 무죄임이 밝혀져도 그 억울한 희생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검찰이 응당 살펴야 할 수많은 화급한 사건들이 잠자고 있는 사례는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 흐르는 희망의 기운 또한 있다. 온갖 압박을 받으면서도 검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온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상부의 지시를 거스르고 양심에 따라 무죄 구형했다 징계를 당한 임은정 검사, 성추행 피해자로 부당한 인사 발령을 받고 항거해온 서지현 검사, 상사의 영장회수 사건에 대해 감찰 신청했다 표적 감사를 받은 진혜원 검사, 강원랜드 수사 외압을 폭로한 안미현 검사. 그 밖에 수많은 검사들이 여전히 검사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위계와 충성 논리가 판을 치는 '그쪽' 세계에서 이런 분들이 더 큰 역할을 맡아 신명나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거꾸로 가는 검찰의 시간 속에서 이들의 시간은 오롯이 인내로 점철된 벌새의 시간이었다 할 수 있다. 영화 '벌새'에서 주인공 은희는 공부 잘해서 부모의 기대를 오롯이 받는 오빠의 상습 구타를 견디며 아픈 성장기를 통과한다.


그 하루하루가 벌새의 시간이다. 1초에 80회까지 파닥파닥 날갯짓하는 벌새. '너 이제 맞지 마.' 영지 선생님의 다부진 한 마디가 은희에게 힘이 되었듯, 우리 사회 또한 보이지 않는 날갯짓을 하는 벌새들의 합창과 어울림으로 한 걸음씩 전진해왔다.


권세의 그늘을 뚫고 나올 무수한 벌새들의 시간. 우리가 지나온 불의한 세월 속에서 벌새들의 날갯짓이 큰 파동을 만들어 왔듯 지금도 벌새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 거기 기댄다.


정은귀 한국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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