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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윤의 책섶] ‘흑인 소녀’를 구글링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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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알고리즘에 녹아든 차별과 편견의 시선
인종·성별 차별하며 주류 계층 본위의 정보 제공하는 ‘알고리즘 권력’의 민낯

구글의 인종차별적 검색 알고리즘을 고발한 루마니아의 광고. 사진 = andrei-ivascu

구글의 인종차별적 검색 알고리즘을 고발한 루마니아의 광고. 사진 = andrei-ivas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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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최근 발생한 두 건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온 국민이 두려움에 휩싸인 미국. 먼저 발생한 텍사스주 엘패소 사건의 총격범 패트릭 크루셔스는 범행 전날 백인 우월주의 사이트에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고 미국 문화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글을 남겼다. 범행 후엔 “(자신의 범행은) 히스패닉의 텍사스주 침공에 대한 대응”이라고 밝혀 범행동기가 인종차별에서 기인했음이 드러났다.


크루셔스의 발언에 어떤 기시감이 느껴졌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겹쳐 보였던 것. 지난 5월 2020년 대선 유세 중 트럼프 대통령은 중남미 출신 히스패닉계 이민을 두고 ‘미국 침략’이란 표현을 써 구설에 올랐다. 대통령부터 인종 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 사이 대중은 서서히 불평등과 혐오에 젖어들었고 그 배경에는 모든 지식이 유통되는 검색엔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대 정보학 교수인 저자 사피야 우모자 노블은 딸 아이 장난감 구매를 위해 구글을 검색하던 중 놀라운 결과를 목도했다. ‘흑인 소녀’란 단어를 검색하자 곧 흑인 소녀를 상품화한 낯 뜨거운 포르노 사이트가 최상단에 뜬 것. 그는 이내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이 과연 얼마나 객관적일까에 의구심을 갖게 되고, 인종과 성별에 대한 편향적 알고리즘은 없는지 추적에 나선다.


검색 엔진이 인종을 차별한다?


인종 차별, 특히 흑인에 대한 검색 엔진의 차별적 결과 제공에 대해서는 대통령도 예외가 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당시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구글 맵에 ‘검둥이(N*gger)’를 검색하면 백악관이 표시되는 사건이 있었다.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를 구글에 입력하면 자동 완성 문구로 ‘유인원’이 뜨는 일까지 발생하자 백악관은 구글에 문제를 제기했고, 구글이 해당 사진의 노출을 막고 검색 결과를 없애고 나서야 사건은 일단락됐다.

2016년 6월 미국 고등학생 카비르 알리는 구글에 ‘10대 흑인 3명’을 검색했고, 이내 10대 흑인 소년들의 머그샷이 빽빽이 등장했다. 반면 ‘10대 백인 3명’을 검색하자 축구공과 농구공을 든 건전한 모습의 백인 청소년 사진들이 연이어 나왔다. 검색 과정이 담긴 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하자 구글은 언제 그랬냐는 듯 ‘10대 백인 3명’ 검색 결과에 머그샷을, ‘10대 흑인 3명’ 검색 결과에는 건전한 이미지를 조용히 추가해 누리꾼의 비웃음을 샀다.


미국 헌터대 사회학 교수 제시 대니얼스는 인터넷에서 인종 정체성을 부여하는 근거가 백인우월주의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보 기술의 설계와 그 실행 과정에서 인종적 이념이 녹아들었다는 의심은 꾸준히 제기돼왔던 상황. 한 미디어 연구가는 서양의 인터넷은 백인과 남성, 자산계급과 이성애자, 그리고 기독교 문화를 구조적으로 옹호한다고 설명했고, 실제 인종차별과 성차별은 사회 조직에서 나타난 양상 그래도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에 투영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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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소녀를 통해 살펴본 검색 엔진의 성차별


장구한 저자의 검색 알고리즘 추적의 신호탄이 된 검색어 ‘흑인 소녀’는 유색인종의 상품화와 인종에 대한 관념이 검색 엔진에 어떻게 투영됐고, 재생산됐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거 노예제로 인해 경제적 착취 대상이 된 아프리카계 여성은 성폭행과 정복의 대상으로 치부됐고, 백인의 심리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복종적 하인으로의 역할을 강요받았다.


저자는 이 같은 흑인 여성에 대한 주류 사회의 고정관념이 드러난 예로 매춘부 이세벨을 제시한다. 100년 넘게 음탕한 여자 이미지로 소비되어 온 다양한 이세벨 이미지 속에는 사춘기 이전의 얼굴을 하고도 몸은 성인의 풍만한 나신(裸身)으로 묘사된, 오늘날 ‘흑인 소녀’ 검색 결과의 원형이 숨어있었다. 미국 페리스주립대 짐크로우 박물관 연구가들은 이 그림을 통해 “흑인 어린이가 종종 성인과 같은 성적 착취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당초 구글 검색창에 ‘흑인 소녀’를 검색하자 나타난 포르노그래피를 두고 사회 각층에서 비판과 지적이 이어지자 구글은 검색 알고리즘을 소폭 조정한 뒤 “검색 결과에서 포르노그래피가 우선 표출되는 일은 막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우스꽝스럽거나 왜곡된 흑인 소녀가 주인공인 영상들이 제공됐으며 은밀한 방식으로 흑인 소녀에 대한 성차별적 이미지가 제공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중은 검색 엔진의 빅데이터 기술이 공정할 것이라 단정하지만, 저자는 검색엔진은 공공도서관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과거부터 백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의 디지털 격차 문제는 꾸준히 제기된 바 있지만, 기저의 불평등한 상황을 부추기는 권력 관계의 구조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오랜 역사와 문화에 녹아든 편향적 시선은 구글과 같은 전 세계적 검색엔진에도 어느새 스며들어 있었고, 특정 계층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도구로 은밀히 사용되고 있었다.


이 같은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자 미국 정부는 동등한 기회를 위한 빅데이터를 설계하고, 투명하고 책무를 강화한 알고리즘 개발을 독려하겠다고 나섰지만 자본 시장의 중심에 선 검색 엔진이 이를 자발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검색 엔진의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편향성과 사용자의 싸움은 앞으로도 긴 시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사피야 우모자 노블 저/노윤기 역/한스미디어/1만6000원>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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