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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의 갤러리 산책] 한국 근대미술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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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근현대 명화 70여점 전시…기관차 등 신문물 접한 인식의 변화 담아
국립현대미술관 저평가된 근대작가 발굴…정종여·임군홍 등 월북작가 작품도 재조명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기차가 화폭의 절반을 채웠다. 신호를 주고받는 역무원과 기차에 매달린 기관사는 눈을 비비고 뚫어지게 쳐다봐야 할 정도로 작다. 기차와 사람의 대조는 기차의 경이로움을 표현한다. 대구가 고향인 여성화가 이경희가 1957년에 그린 '출발하는 기관차'다. 1950년대 대구역을 묘사한 작품으로 제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57년) 출품작이다.㎝


이대원이 1956년에 그린 '창변'은 붉고 푸른 원색이 강렬하다. 야수파 작가들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이대원은 경성제국대학 법대 출신이다. 그는 젊은 시절 미국과 유럽 미술계를 돌아본 뒤 강한 충격을 받았다. 2005년 임종할 때까지 원색의 강렬한 그림을 줄기차게 그렸다.

이경희 '출발하는 기관차', 1957, 종이에 수채, 76x10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이경희 '출발하는 기관차', 1957, 종이에 수채, 76x10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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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원 '창변', 1956, 캔버스에 유채, 116x91㎝,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이대원 '창변', 1956, 캔버스에 유채, 116x91㎝,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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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가 한국 근대미술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지난 2일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한국근현대명화 70여점을 전시하는 '근대의 꿈:꽃나무는 심어 놓고'를 개막했다.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 작품을 제대로 조망하고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한 전시다. 눈길을 끄는 작품이 많다. 그러나 작가의 이름은 적잖이 낯설다. 김환기, 박수근, 나혜석, 이중섭, 천경자 등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이대원, 이경희처럼 낯선 이름이 더 많다.

화가들은 근대 신문물을 접한 뒤 경험한 인식의 변화를 고스란히 작품에 반영했다. 이경희가 그린 기차는 근대 문명의 상징이다. 화가들이 교외로 멀리 나갈 수 있게 해준 기차는 가지고 다니기 편한 튜브 물감의 개발과 함께 인상주의가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이유태는 1944년에 당당한 젊은 여성을 그린 '탐구'와 '화운'에서 배경 소품으로 현미경과 삼각 플라스크, 피아노를 그렸다. 신문물의 도입과 함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본웅의 '여인(1940년)', 김인승의 '독서하는 여인(1953년)', 김형구의 '새와 소녀(1961년)' 등 여성을 그린 작품이 많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정재임 학예사(37)는 "개화기 이후 신문물을 접하고 신식 교육을 받으면서 여성의 주체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유태 '여인일대(女人一對) 탐구(探究)', 1944, 종이에 채색, 213x153㎝,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왼쪽), 이유태 '여인일대(女人一對)  화운(和韻)', 1944, 종이에 색, 210x148.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이유태 '여인일대(女人一對) 탐구(探究)', 1944, 종이에 채색, 213x153㎝,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왼쪽), 이유태 '여인일대(女人一對) 화운(和韻)', 1944, 종이에 색, 210x148.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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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상화는 근대 화가들에게서 자화상으로 바뀐다. 정재임 학예사는 "신문물을 접하면서 개인의 자의식이 발달한 때문"이라고 했다. 자의식의 발달은 가족을 그린 그림으로 확장된다. 박수근과 이중섭이 특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조선시대에 많이 그린 산수화는 일상의 풍경으로 변화했다. 문신은 '가로수(1959년)'를, 권옥연은 '신당동 풍경(1947년)'을, 이마동은 '흑석동 풍경(1965년)'을 그렸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999년 천경자의 작품 아흔세 점을 기증받았다. 이번에 다섯 점을 전시한다. 똬리를 튼 뱀 서른다섯 마리를 그린 '생태(1951년)', 쉰셋의 천경자가 스물두 살의 자신을 회상하며 그린 자화상 '나의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년)' 그리고 '단장(1950년대)', '여인들(1964년)', '꽃무리(1972년)'를 감상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덕수궁 미술관에서 한국미술사에서 저평가된 근대 작가를 발굴, 재조명하는 전시를 하고 있다. 전시 제목은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다. 정찬영, 백윤문, 정종여, 임군홍, 이규상, 정규 등 근대화가 여섯 명의 작품 134점을 전시한다. 제목이 절필시대인 이유는 이들이 자의든, 타의든 국내 미술사에서 어느 순간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찬영은 평양이 고향인 여성 화가다. 당시 여성 화가들은 대부분 기생이었는데 정찬영은 좋은 집안에서 고등학교 교육까지 받아 규수 작가로 불렸다. 작품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지만 생후 8개월 된 아들을 병으로 잃고 남편이 월북하면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정찬영은 화조화를 잘 그렸다. '창경원'에서 공작을 보고 그린 '공작(1935년)'과 '공작도 병풍(1937년)'은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정찬영 '공작도 병풍', 1937, 비단에 채색, 173.3×25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정찬영 '공작도 병풍', 1937, 비단에 채색, 173.3×25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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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여 '독수리', 1948, 금장 종이에 채색, 155×356㎝ 연세대학교박물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정종여 '독수리', 1948, 금장 종이에 채색, 155×356㎝ 연세대학교박물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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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여의 '독수리(1948)'는 폭이 3.56m나 된다. 독수리의 매서운 눈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정종여는 대작을 많이 그렸다. 미술관 중앙홀에 걸린 '의곡사 괘불도(1938)'도 그의 작품이다. 높이가 6.24m다. 정종여는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조명 받지 못했다.

임군홍도 월북 작가다. 임군홍은 광고회사로 큰돈을 벌었고 중국에서도 사업을 해 자금성 등 중국을 그린 작품을 많이 남겼다. 이규상과 정규는 병으로 일찍 세상을 등졌고 백윤문은 젊은 시절 기억상실증에 걸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2월12일 한국화랑협회 제19대 회장에 취임한 최웅철 웅갤러리 대표는 2년 임기 동안 한국 근대미술 알리기에 힘쓸 계획이다. 최 회장은 "추상에 치우친 현대미술과 달리 구상 작품 위주인 근대미술을 살리면 대중들이 쉽게 미술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에 근대미술관 건립을 건의하고 오는 9월 개막하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도 근현대 특별전을 열어 우리나라 근대 미술을 재조명하겠다"고 덧붙였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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