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드라마 '스타워즈' 속 숨겨진 철학적 코드

[이종길의 영화읽기]다스베이더가 '초인'이 되지 못한 이유
AD
원본보기 아이콘


"포스가 너와 함께 하기를(May the Force be with you)."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다. 포스는 우주 전역에 흐르는 힘이다. 모든 생명체의 세포에는 이를 사용하게 하는 미생물 미디클로리언이 있다. 그 수치가 높을수록 포스를 많이 끌어들여 강해진다. 제다이는 이를 온전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수련에 매진한다. 반면 시스는 개인의 힘을 키워 포스를 자신의 힘으로 끌어들인다. 이 세계의 창시자인 조지 루카스 감독(73)은 두 힘을 각각 라이트사이드와 다크사이드 포스라고 명명했다. 선과 악이다.

마니교 교의의 근본인 광명ㆍ선과 암흑ㆍ악의 이원론을 반영한 구도다. 최후의 예언자인 마니는 인간의 영혼은 타락해서 악의 물질과 섞여 있다고 주장한다. 영혼 또는 지혜만이 이를 해방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가 펼친 신화에서 이 흐름은 분리되는 과거, 혼합되는 현재, 재설정되는 미래로 나타난다. 스타워즈는 이를 충실히 따른다. 겉보기에는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가 추파를 보내는 레아 공주(캐리 피셔)는 그의 여동생이며, 팽팽하게 맞붙은 다스베이더(데이비드 프로우즈)는 그의 아버지다. 레아 공주와 결혼한 한 솔로(해리슨 포드)는 다스베이더처럼 아들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에게 죽임을 당한다. 대를 이어 지속되는 가족 싸움은 우주 전체를 뒤흔든다. 혼합되는 현재이자 재설정되는 미래다. 분리되는 과거는 제다이의 수련을 통해 나타난다. 그들은 포스가 악용되는 것, 즉 내면이 어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도덕성을 정립하면 어떤 기술을 사용해도 어둠에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다스베이더가 '초인'이 되지 못한 이유 원본보기 아이콘

제다이의 이상향은 플라톤 철학의 중심 개념인 이데아와 비슷하다. 감각 세계 너머에 있는 실재이자 모든 사물의 원형(형상)이다. 현상계에서는 얻을 수 없다. 아무리 완전해 보이는 사람, 행동, 규칙, 제도라도 그보다 좋아질 여지가 있다. 특히 사람은 플라톤이 제시한 '절대선'의 기준에서 도덕적으로 불완전하다. 일탈의 여지도 있다. 끊임없이 내면을 수련해야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스타워즈에서는 오비완 케노비(알렉 기네스ㆍ이완 맥그리거)가 경지에 도달했다. 영원불멸한 존재가 되어 귀신처럼 돌아다닌다. 그도 처음에는 현상계의 죄수였다. 플라톤의 설명대로라면 동굴 속에 갇혀 마주한 벽에 드리운 그림자만으로 사물을 판별했다. 끊임없는 수련으로 동굴 밖으로 나와 실체를 깨닫고, 이를 비추는 태양까지 마주한 셈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절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의 부재만 있을 뿐이다. 잃으면 잃을수록 존재성은 사라진다. 스타워즈는 이 개념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뭐니 뭐니 해도 다스베이더가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다. 선에서 멀어질수록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한다. 행동하는 악이자, 이야기의 핵심이다. 선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결핍을 악으로 메우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위험(1999년)'과 '클론의 습격(2002년)', '시스의 복수(2005년)' 등 무려 세 편에 걸쳐 나타난다. 어머니(페닐라 어거스트)를 향한 그리움, 아미달라 여왕(나탈리 포트만)과의 사랑, 더 큰 힘에 대한 갈망 등이다. 제다이의 지도자인 요다(프랭크 오즈)는 괴로워하는 제자에게 플라톤처럼 수련을 요구한다. "미래를 느끼면 어둠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라. 죽음은 삶의 일부이고, 지극히 자연스런 포스의 섭리다. 비통해하거나 그리워해서는 안 된다. 애정은 질시로 이어지고, 탐욕을 잉태한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이종길의 영화읽기]다스베이더가 '초인'이 되지 못한 이유 원본보기 아이콘


다스베이더는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한다. 스스로 어둠 속에 들어가 행성들을 정복해간다. 파괴와 정복, 지배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이 에너지의 원천이다. 이는 욕망을 거부하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다스베이더는 스카이워커와의 대결에서 허점을 노출한다. 부성애에 욕망이 가로막혀 최후를 맞는다. 뒤를 잇는 렌은 아버지를 죽인다. '깨어난 포스(2015년)'에서 미숙한 전투력을 드러냈으나 우주를 정복할 정도로 힘을 키울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신경과민에 시달릴 일도 없다. 욕망은 바깥으로 표출되지 못하면 이를 품은 사람을 거스르는 형태로 되돌아온다. 신체ㆍ정신적 질병으로 나타나기 일쑤. 다스베이더나 렌은 적어도 이 족쇄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스스로 개선할 기회를 마련할 수 없다. 욕망의 주인이 아닌 노예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이런 자들이 더 훌륭한 욕망과 충동을 품어야 위대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다스베이더는 어두운 욕망과 충동을 변형시킬 여지가 충분했으나 다스 시디어스(이언 맥디어미드)의 명을 받드는데 머물렀다. 그로 인해 원초적 욕망과 충돌의 극한을 맛볼 수 있었겠으나, 한층 궁극적이고 영적인 승화에는 실패했다. 니체가 제시한 고도로 승화된 자, 다시 말해 초인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과대망상증 환자에 가까워졌다. 엄청난 잠재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검은 헬멧을 쓴 뒤로 어두운 충동과 욕망을 마음 가는대로 내버려둔 대가다.

AD

[이종길의 영화읽기]다스베이더가 '초인'이 되지 못한 이유 원본보기 아이콘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SF 철학'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니체의 태도가 다스베이더에도 대입된다고 했다. "니체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타락해 그의 고귀함을 잃은' 자이다. 승화의 과정은 지속적인 것이고 보답이란 없다. 유럽 정복에 필요한 편의 같은 것은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폴레옹은 강한 지배욕과 이를 위해 사용한 방법들 때문에 초인으로 승화될 수 없다. 이것은 다스베이더의 삶을 평가하는 좋은 판단 기준이 된다." 다스베이더가 묘한 동질감을 유발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와 우리는 모두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폭력과 쾌락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유쾌하고 즐거움을 유발하는 오브제를 피하는 대신 이 충동을 받아들이고 승화시킬 수 있다면 다스베이더보다 위대해질 여지가 있다. 니체도 '우상과 황혼'에 썼다. "시대가, 사람이, 개인이 허용하는 열정이 더 크고 격렬할수록 이를 어떠한 수단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문화는 고귀해진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