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림 시인

윤제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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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이쪽 편은 일종의 문학공원이거나 예술가 마을입니다.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인의 집이 있고, 또 한 굽이돌면 화가의 집이 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소설가 두 사람의 집이 연달아 나타납니다. 워낙 이름난 이들이 사는 곳이라서,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차례로, '박인환-이중섭-계용묵-최서해 씨 댁'입니다. 그런 이들 곁에 섰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요즘 문자로, '레전드(legend)'와 악수하는 기분입니다. 스타와 일대일로 인사를 나누는 황홀감이 꼭 이럴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무슨 말로 안부를 물어야할지 당혹스러워집니다.

시인 박인환 씨 댁 입구에는 큼직한 빗돌 하나가 서 있습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그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의 일부입니다. 집 앞에는, 귀에 더 익숙한 문장이 있습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


한 시절을 풍미하던 어느 여성가수의 목소리로 남아있는 시 '세월이 가면'의 첫머리지요. 세월이 갔지만, 한국문학은 당신 이름을 잊지 않았습니다. 명실상부한 모더니스트, 당신의 눈동자와 입술도 기억합니다. 대부분 꾀죄죄한 차림으로 궁핍의 나날을 견딜 때에도, 당신은 영국신사처럼 잔뜩 모양을 내고 다녔다지요.

강원도 인제 '박인환 문학관'에 가면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전쟁 직후의 명동 풍경이 거기 있고, 그 가운데 당신이 있습니다. 지금 제가 와 있는 '망우리' 여기서도, 평안하신지 궁금합니다. 당신의 기일(忌日)이면, 아들이 올리는 담배 '럭키스트라이크' 와 위스키 '조니워커'도 여전히 반가우신지요.


아무려나, 망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습니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로 시작되는 단가 '사철가'의 무대를 닮았습니다. 이제 '한로상풍(寒露霜楓)' 국화의 계절은 지나고, '낙목한천(落木寒天)' 눈 내리는 계절. 이 마을 지붕마다 차가운 달빛이 내리고, 하늘과 땅이 온통 '은세계'를 이루는 날이 잦아질 것입니다.


[윤제림의 행인일기 70]망우리에서 원본보기 아이콘
이중섭 씨 비석에는 두 아들 이름이 보입니다. 그토록 오매불망 그리던 '태현이, 태성이'입니다. 화가가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을 얼굴들이 그림으로도 새겨져 있습니다. 막역했던 친구 '구상(具常)' 시인이 원산시절에 목격했다는 장면도 생각납니다. 행복한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기에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더니, 세상에!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벌거벗고 놀고 있었다지요. 이중섭 그림 속 가족 풍경과 같더랍니다. 그 정경이 하도 맑고 예뻐서, 시인은 슬며시 뒷걸음으로 물러나왔다고 들었습니다. 화가는 지금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을까요. 옛날 제주나 통영에서처럼, 여전히 가족이 모두 모여 즐길 날을 목 빠지게 기다릴지 모릅니다.


시인과 화가의 집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써서, 두 소설가와는 인사만 겨우 하고 지나왔습니다. 짧은 겨울해가 무서워서 그랬습니다. 목표로 삼은 '서울둘레길'의 한 구간을 통과하려면 걸음을 서둘러야 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가수 한 사람이 발목을 잡고 놓지 않습니다. '차중락'.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그 사람입니다. 그의 묘소로 가는 길 풍광이 그의 레코드판 재킷 그림 같습니다. 스물일곱, 짧았으나 뜨거웠던 생애가 이종사촌 형 '김수영' 시인을 생각나게 합니다. 김수영의 친구 박인환까지 다시 불러냅니다. 모두 비슷했던 운명의 주인들, 가슴 깊이 품은 곡조를 온몸으로 밀고 간 사람들입니다.


근심 걱정일랑 모조리 잊었을 것입니다. '망우(忘憂)'의 영토니까요. '망우'라는 이름은 태조 이성계와 관련이 있답니다. 오늘의 동구릉(東九陵) 언저리에 자신의 쉴 곳을 정해놓고는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들어가 누울 자리(건원릉 터)를 정해놓으니, 한 시름 잊겠다." 그리하여, '망우'.


순간, 태조는 넘어가야 할 경계를 보았을 것입니다. 되돌아보고 싶은 생각은 아예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잊는(忘) 것은, 새로운 마음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望) 일. 그런 생각이 저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렸습니다. 저 역시, 어서 잊어버리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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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딱 고개'라 불리는 570계단을 따라 오르니, '용마산(龍馬山)' 정상입니다. 천마산(天馬山), 아차산과 함께 고구려의 최남단 보루였지요. 어디선가 날개달린 말 한 마리가 나타나, 구름을 차고 오를 것만 같습니다. 저만치, 이 나라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 불쑥 솟아오르며 실루엣을 드러냅니다.


망우리에 대한 오해가 대번에 씻깁니다. 오늘 보니 '망자(亡者)'의 동산이 아니라, '희망'의 정원입니다. 휘적휘적 걷다보면 수심은 제풀에 물러납니다. 버려야 할 길과 나아갈 길이 나침반의 동서남북처럼 또렷이 읽힙니다. 바람의 이야기가 마음의 풍향(風向)을 바꿔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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