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뭐 먹지]영혼을 위로하는 안주…'모둠 순대'
순대의 친구들 모두 불러 차리는 한 접시의 호사
순대는 서민의 음식이다. 예로부터 속이 허해서 걸진 음식이 무척이나 당기는 날 고기는 엄두 내지 못하고 남들 손사래 치는 내장 부위로나마 기름기를 보충하려 했던 우리네 민초들의 음식이었다. 지금도 시장 어귀 간판도 없는 가게에서 큼직이 순대를 써는 아낙,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순대 한 입 베어 무는 남자의 구부정한 뒷모습에는 아등바등 하루를 견뎠던 고단한 삶의 무게가 얹혀있다.
그의 영혼을 위로해 줄 한 접시. 분식집에서 팔던 당면순대여도 든든하다. 찹쌀과 채소, 선지 등을 넉넉히 넣어 순대를 만들었다면 이미 남부럽잖은 안주다. 흔한 소창이 아닌 막창을 쓴 순대라면 자연스럽게 한 잔 마실 것을 두 잔 마시게 된다. 여기에 순대의 친구들을 더 불러보자. 머릿고기와 내장을 썰어 함께 놓으면 그 한 접시로 순대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가 완성된다. 힘든 하루를 보낸 날 떠올리게 되는 대표적인 서민 안주, 바로 '모둠 순대'다.
먼저 간명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순대와 머릿고기를 맛보자. 한 점을 집어 새우젓을 올린 후 입으로 가져가면 된다. 질 좋은 소금이 있다면 살짝 흩뿌려도 좋다. 가득찬 고소함 속에 잠깐 어리비치는 짭조름함. 한 잔 털어 넣으면 입안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다시 한 점과 한 잔을 부른다.
내장은 면면이 좀 복잡하다. 눈에 띄는 것은 '암뽕'과 '오소리감투'. 암뽕은 암퇘지의 자궁이다. 흔히 '아기보', '새끼보' 등으로 불리는 부위다. 쫄깃한 식감이 특징인데 씹으면 눅진한 돼지 특유의 맛이 혀에 스며든다. 전라도에서는 '암뽕순대'라는 음식도 있는데 암뽕의 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 암뽕과 돼지막창을 이용한 순대를 한 접시에 내는 것이다.
오소리감투는 돼지의 위다. 부드러운데 쫄깃쫄깃하고 입안에 고소한 맛이 가득 찬다. 오소리감투란 이름이 붙은 이유에 대해 전해지는 얘기는 이렇다. 과거 마을에서 돼지를 잡을 때면 동네 사람 여럿이 고기를 손질하고 내장을 씻었다. 그런데 맛있는 위만 슬쩍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오소리도 한 번 굴속으로 숨으면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자꾸 사라지기 일쑤인 이 부위가 동굴 속으로 숨으면 찾을 길 없는 오소리 같다고 여기게 됐다. 맛있는 부위가 슬그머니 사라지니 싸움도 잦았을 것이다. "내 오소리 내놔라", "난 오소리 본 적 없다" 이 모습이 벼슬을 놓고 다투는 것과 비슷해 벼슬을 뜻하는 감투가 붙어 '오소리감투'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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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고기와 내장까지 두루 맛보면 다시 순대로 눈을 돌리게 된다. 순대의 '대'는 자루를 뜻하는 한자 대(袋)에서 왔다는 게 통설이다. 어째서 '순'이 붙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만주어 '순타(sunta)'가 순대로 바뀌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몽골에서는 예로부터 유목생활을 하며 가축의 고기와 피를 창자에 넣어 먹었고 이를 순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순타가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입과 함께 들어온 것이 아니겠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아직 순대의 유래에 대한 정설은 없다.
순대가 우리 기록에 처음 나오는 것은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다. 내용을 보면 "창자를 뒤집어 깨끗이 빨아 숙주, 미나리, 무를 데쳐 배추김치와 함께 다져서 두부를 섞는다. 파, 생강, 마늘을 많이 다져 넣고 깨소금, 기름, 고춧가루, 후춧가루 등 각색 양념을 넣고 돼지 피와 함께 주물러 창자에 넣는다. 부리를 동여매고 삶아 식혀서 썬다"고 돼 있다. 오늘날의 순대 조리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순대는 보통 돼지 창자로 만드는데 이 시의전서에는 민어 부레를 이용하는 어교순대도 함께 소개돼 있다. 지역별로 보면 함경도 지방에서는 많이 잡혔던 명태의 속을 채우는 명태순대가 있었다. 강원도에서는 오징어로 순대를 만들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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