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만주일대 넘나들며 독립단 조직…무장투쟁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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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11월17일 ‘순국선열의 날’을 맞이해 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무장 독립운동을 이끈 조응순 선생 등 66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했다. 조응순 선생은 러시아령 연해주에서 안중근 의사와 함께 ‘단지(斷指) 동맹’을 맺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응순 선생의 독립운동은 의병으로 출발했다. 1905년 함남 원산 일대에서 행상(보부상)으로 생활하다 1906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하면서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첫 활약은 1908년 연해주에서 의병 전제익 부대 입대 후 참여한 국내진공작전이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연해주 연추 근교에서 안중근 의사와 함께 손가락을 자르고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맹세한 ‘단지 동맹’을 서약했다. 단지 동맹에 참가한 항일투사는 총 12명. 이들은 왼속 넷째 손가락 첫 관절을 잘라 태극기에 ‘대한독립’을 쓰며 독립운동을 맹세하고 의형제를 맺은 비밀 결사대다.

또 1917년 재중 일본공사 임권조에게 참간장(斬奸狀·악인을 처단할 때 그 이유를 적는 글)을 보냈으며 이듬해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국민회를 조직했다. 1920년 12월에는 치타에서 열린 상해 연해주 당원대회에 참가해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를 결성하고 후보위원이 됐다. 상해파 공산당의 일원으로 고려공산당 창립을 둘러싸고 이르쿠츠크파와 분파투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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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21년 9월 북만주 하얼빈에서 한국의용군 결사대를 결성한 후 대장으로 동지 규합과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활동에 참여했는데 그 해 11월 임시정부 인사와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돼 경성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조응순 선생은 국내를 포함한 러시아, 만주일대를 넘나들며 독립단을 조직해 무장투쟁을 주도한 독립운동 지도자의 큰 길을 보여줬다고 평가받는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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