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반미 구호가 더이상 먹히지 않는 이유
종북 트라우마·북한에 대한 침묵·먹고사니즘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한때 ‘반미(反美)’는 진보 진영의 핵심 구호였다. ‘양키 고 홈(yankee go home)’으로 대표되는 반미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부터 2000년대 후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투쟁까지 국민에게 호소력 짙게 다가왔다.
이젠 반미 구호의 약발이 다한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訪韓)을 앞두고 연이어 열린 반미 집회가 흥행에 실패하며 외면 받았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 앞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중당 등 220여개 단체가 모여 만든 ‘NO트럼프 공동행동’이 반미 집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한반도에 살아가는 민중들이 죽든 말든 평화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입만 열면 전쟁위협을 한다” “군사긴장 고조시켜 천문학적 비용의 무기를 팔아먹으려 한다” 등의 비난을 퍼부었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주한 미국대사관 앞까지 행진했다. 이날 집회엔 경찰 추산 700명이 참가했다. 주최 측이 추산한 참가자 수도 2000명에 그쳤다.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참여연대 등 또 다른 진보 성향 단체들이 연 반미 집회에도 경찰 추산 2000명(주최 측 추산 5000명)이 참가했다.
주말 이틀간 서울 도심에서 열린 반미 집회에 최소 2700명에서 최대 7000명이 참가했다. 수백만명이 참가한 촛불집회와 비교하면 ‘새발의 피’다.
공동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 수도 촛불집회 참가 단체(2300여개)에 비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반미 구호가 국민의 외면을 받은 이유는 뭘까.
우선 진보 진영부터 갈라졌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강제 해산된 뒤 진보 진영은 ‘종북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 주말 반미 집회를 진보 진영이 따로 개최한 것만 봐도 분열의 간극을 엿볼 수 있다. 4일 집회를 연 민중당엔 김재연·이상규 전 의원 등 통진당 출신 인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북한 정권엔 눈 감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공동행동은 트럼프 대통령을 한반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미치광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 대해선 침묵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라는 객관적 조건은 무시한 채 ‘조건 없는 평화협상’만 외친다.
아울러 반미는 ‘먹고사니즘(먹고 사는+주의(-ism)’과 동떨어져 있다. 지난 겨울 촛불국민이 외쳤던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 속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가 있었다. 먹고 사는 문제로 머리가 지끈한 국민에게 반미 구호는 공감하기 어려운 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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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0대 총선에서 민중연합당(통진당 후신)은 정당 득표율 0.6%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소멸했다. 그런데도 민중당으로 옷을 갈아입고 반미를 내세워 다시 국민 앞에 서려고 한다.
김창한 민중당 상임대표는 주말 반미 집회에서 “종속적인 한미동맹 역시 한국 사회의 오랜 적폐”라며 “노동자, 농민, 청년, 여성 등 모든 계급, 계층 조직들이 평화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계급과 계층은 이들 눈에만 보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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