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질없어서 민들레는 들판 너머로
 씨앗을 날려 보낸다, 멀리 바닷가로 가서
 수평선을 기웃거리다
 어떤 섬에도 내려앉지 못해 마침내 수장되겠지만


 이른 봄날 민들레꽃 지천인 외딴섬 여 사이로
 팽팽한 실랑이 끝에 낚싯줄 끊고 도망치는
 물고기가 있다, 해도

[오후 한 詩] 유전자전/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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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늘에서 멀찍이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맞물리면 벗어 버릴 수 없어
 미끼 근처로 되돌아서는 호기심

 이 끈적임은 피가 아니라 떨칠 수 없는
 유전자라는 것, 일생이 겨워도
 한입 적시며 종족들은 이어진다
 고집 센 물고기가 당겨 대다 기진하는 바닷속에도
 느슨하지만 연대가 엄연한 삶,


 우리가 죽음이라 불러서 은밀하고 두터운
 생식들은 지켜진다, 어둠 속에서
 슬그머니 삐져나온 손이 다른 손목을 휘어잡는다
 상대는 안 보이는데 끈끈하게 질척거린다면
 나를 휘어잡은 것 너의 사랑인가, 눈먼 유전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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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른손잡이인 것도 머리카락이 노르스름한 것도 유전자 때문이라고 한다. 남들보다 이가 약한 것도 아니 이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 일상적인 습관들도 모두 다 유전자 때문이고, 한때 술만 마시면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던 것도 외로움을 타서거나 수줍어서가 아니라 단지 유전자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 좋다. 거기까지는 그래, 인정한다. 차라리 인정하고 나니 속이 편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말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 또한 "눈먼 유전자" 때문일까? 정말 그럴까? 결국 수장되고 말지도 모를 제 홀씨를 기어코 바다로 날려 보내는 민들레의 마음 또한 그저 부질없는 유전자의 소치일까?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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