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호암상 수상자가 전하는 연구의 가치와 철학…"변화의 힘은 창조성" 사회공익 정신 구현의 장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특별히 머리가 비상하거나 뛰어난 특기가 없는 제가 환자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무수히 많은 선생님들과 선후배 동료들이 있습니다.”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로 호암아트홀. ‘2017 호암상’ 수상자인 백순명 연세대 의대 교수의 수상소감은 겸손했다.

‘호암의학상’ 수상자인 그는 “제가 이 기회에 꼭 강조하고 싶은 점은 온코타입(Oncotype) Dx는 저 개인이 발명한 것이 아닌 무수히 많은 연구자가 협력하여 만든 융합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백순명 박사는 유방암과 대장암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병리학자이다. 백 박사는 전체 유방암 환자의 60~70%를 차지하는 호르몬 수용체 양성인 유방함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온코타입 DX 유전자 검사법을 개발해 항암요법을 받지 않아도 되는 환자군을 선별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호암재단은 유방암 환자들에게 항암치료의 고통을 벗어나게 해준 백 교수의 업적을 인정해 호암의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백 교수는 이날 수상소감을 통해 “제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었지만, 단지 우연히도 준비된 상태에서 벌어진 우연이었기에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창출할 수 있었던 지독히 운이 좋은 연구자일 뿐”이라고 의미심장한 얘기를 남겼다.


1일 서울 중구 서소문로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2017 호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호암재단 손병두 이사장, 의학상 백순명 교수 부부, 공학상 장진 교수 부부, 스벤 리딘 前 노벨화학상 위원장. 뒷줄 왼쪽부터 과학상 최수경 교수, 사회봉사상 라파엘클리닉의 안규리 대표, 김전 이사장, 예술상 서도호 작가

1일 서울 중구 서소문로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2017 호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호암재단 손병두 이사장, 의학상 백순명 교수 부부, 공학상 장진 교수 부부, 스벤 리딘 前 노벨화학상 위원장. 뒷줄 왼쪽부터 과학상 최수경 교수, 사회봉사상 라파엘클리닉의 안규리 대표, 김전 이사장, 예술상 서도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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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스스로를 낮췄지만, 우연이 연구 결과로 연결되기 위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백 교수는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제 인생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우연의 기회가 (한국에서는) 미국보다 훨씬 적게 발생한다는 사실”이라며 “결국 우연도, 우연이 생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지 생긴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의 이러한 얘기는 호암상 시상식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호암상은 과학상, 공학상, 의학상, 예술상, 사회봉사상 등의 각계 부문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한 이들을 시상하는 자리로 머물지 않고 그 이상의 철학적 가치를 담고 있었다.


기술진보와 물질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공동체와의 공존, 나눔의 가치 실천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였다. 실제로 학문적인 업적이 뛰어난 이들은 물론 나눔의 실천을 이어간 이들(단체)도 이날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사회봉사상을 받은 라파엘 클리닉은 지난 20년간 사회 가장 소외되고 어려운 환경의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의료봉사 활동을 해온 단체다. 1997년 궤짝 2개를 놓고 간이 병원을 열었던 그 단체는 연간 500명의 의료진과 1500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75개국 1만700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 활동을 할 정도로 커졌다.


안규리 라파엘 클리닉 대표는 “라파엘이 되고자 했던 우리는 사실 이주노동자에게 몸과 치유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면서 “이분들은 누추하고 열악한 우리 진료소를 찾아와, 우리의 쓰임새와 보람을 가르쳐 주었고, 아픔과 말도 통하지 않는 한탄에 조금씩 더 다가갈 수 있는 안내자가 돼 주었다”고 말했다.


‘과학상’ 수상자인 최수경 경상대 교수의 이날 수상 소감도 여운을 남겼다. 최 교수는 스티븐 올슨 박사, 벨 실험팀의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B중간자의 붕괴로 나타나는 입자를 분석해 미지의 입자 X(3872)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인물이다.


최 교수는 과학적인 업적을 남긴 인물이지만, 수상 소감은 소박한(?) 자신의 취미에 대한 내용이었다. 최 교수는 “제가 화분에 키우고 있는 아끼는 나무가 있다. 그 잎들이 창에 그림자를 만들면 그걸 쳐다보면서 잠이 드는 게 좋았다”면서 “(시간이 지나면 죽을 줄만 알았던 나무가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도 이 화분을 볼 때마다 그때의 마음 고생과 함께 어떤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그 지루할 것 같은 과정에서도 결과에 상관없이 그냥 단순하게 일에 몰두하는 것 자체는 항상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공학상을 수상한 장진 경희대 교수는 디스플레이 세계 1등 대한민국을 만든 산증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세계 최초로 플렉시블 아몰레드(AMOLED)와 투명 아몰레드 디스플레이 구현에 성공한 인물이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 평판 디스플레이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2001년부터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 발전과 더불어 지난 30년 동안 디스플레이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호암상’ 유방암 권위자, 그의 독특한 ‘우연’학개론 원본보기 아이콘

예술상을 받은 서도호 현대미술작가는 집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가치를 탐구하는 작품들로 국내외에서 인정을 받는 작가다. 그는 호암상 수상 부문에 예술상이 포함돼 있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서도호 작가는 “예술행위는 종종 현실과는 무관한 사치스런 정신행위 또는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는 경향을 가진 일종의 엘리티즘으로 간주되곤 한다. 하지만 예술행위는 인간이 인간임을 나타내는 가장 의미있는 행위 중 하나이며 그 핵심은 Creativity 즉 창조성”이라고 말했다.


서 작가가 말한 ‘창조성’은 호암상의 의미를 관통하는 또 다른 키워드다. 노벨상 심사를 담당하는 스벤 리딘 스웨덴 룬드대 교수는 이날 축사를 통해 “창조성의 힘은 변화의 힘이며 변화는 언제나 그리고 어디에나 있다”면서 “창조성은 자연의 힘이다. 우리 몸에 깊이 배어 있는 욕구”라고 말했다.


한편 호암상은 삼성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생의 인재제일과 사회공익 정신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0년 설립 제정한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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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삼성 오너 일가가 참석해 성대히 치러졌지만, 올해는 이건희 회장의 와병과 이재용 부회장의 수감 관계로 조촐하게 치러졌다. 행사 자체는 과거에 비해 축소됐지만, 수상자의 면면은 호암상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충분한 자리였다.


손병두 호암재단 이사장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량을 한껏 발휘해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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