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성자(聖者)의 유언장/이시영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로 시작되는 권정생 선생(1937-2007)의 유언장은 생전의 성품 그대로 솔직하고 담백하기 이를 데 없다. 그는 다가올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임을 예견하는가 하면,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 "25살 때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고 다짐했으며, 평소의 평화주의자답게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며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고 했다.
얼간이 폭군 지도자도 없고 전쟁이 없는 그런 세상이, 과연 오기는 올까?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