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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칼럼] 한국사회의 '등에'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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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재 논설위원

이명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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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2일) 오후 청와대를 나와 사저로 옮기면서 몇 달 만에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다. 자신을 파면시킨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국민들의 함성을 거짓과 모략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말은 그에 대해 애써 가지려 했던 동정심마저 거두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적잖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나의 눈에 더욱 충격적으로 들어왔던 건 그의 환한 웃음과 미소였다. 자신에게 부과된 혐의에 대한 인정 여부를 떠나 자신이 놓인 상황,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진 이 대혼란과 위기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이나 성찰도 없어 보이는, 초연이라고까지 해야 할 듯한 그 미소는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섬뜩할 정도였다. 그 웃음은 우리들의 이 소중한 공동체를, 그 공동체의 한 부분인 나 자신을 능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그와 같은 ‘인간’에 속한다고 할 때 그 ‘인간’을 모독하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을 다하려는 것처럼 비쳤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등에’라고 했던, 그리스인들의 나태한 이성을 깨우는 벌레라고 함으로써 맡고자 했던 역할을 반면(反面)의 교사로서 수행하고자 하는 그 ‘소명’을 다하려는 듯했다. 그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어떤 바닥을 보여주려는 듯했다. 숱한 악행과 비리와 무능의 혐의에 대해 무례와 파렴치로 응답하는 그의 언행은 한 권력자의 바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 사회가 지금 놓여 있는, 그리하여 반드시 그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한 바닥이다. ‘박근혜’를 있게 한 것, 그를 최고권력으로 성립케 한 것, 그의 아집과 허언과 막장극을 가능케 했던 것,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박근혜는 등에로써 우리에게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
승리의 기쁨을 분출한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의 시민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승리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승리는 무능하고 타락한 권력자를 끌어내림으로써 이뤄지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던 4년 전, 아니 박근혜를 키워 왔던 지난 수십년간의 그것과는 다른 사회를 만드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을 광장의 촛불 시민들은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새로운 인간, 새로운 시민, 새로운 정의를 세움으로써만이 진정한 승리는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승리의 자축 속에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그 출발점은 혹독한 겨울의 광장에서 부패한 권력에 대한 탄핵과 함께 우리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다짐한 것이다. 광장에서 우리가 촛불을 들며 서로 간에 경험하고 확인했던 것은 추위와 삭풍을 이겨내고 봄의 꽃을 피우는 준비를 하는 겨울나무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었다.

역사의 섭리의 완성에는 한 세대의 눈물과 땀이 필요한 것인가. 2017년에 한 매듭을 지은 촛불의 장엄한 드라마는 87년 6월항쟁의 거대한 물줄기가 30년 굽이를 돌고 돌아 재현된 것이었다. 이제 우리의 새로운 출발은 30년 전 6월 시민 승리의 감격을 오늘 다시 되찾은 것의 감격과 함께 미완의 혁명의 완수를 위한 부단한 전진을 다짐하는 것이다. 그 다짐은 87년 6월이 승리이면서 또한 패배였던 것, 성취이자 좌절이었던 것, 전진이자 퇴각이었음을 뼈저리게 되새기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87년 6월의 2017년에서의 계승과 갱생 속에 6월 항쟁의 완수가 있고, 촛불 혁명의 완성이 있다. 우리 앞에 도달해 있는 새 시대의 먼동은 그 완성과 시작의 끊임없는 순환 속에 비로소 봄을 열 것이다. 우리가 지난 몇 달 간 광장에서 발견했던 헐벗은 겨울나무의 의지를 놓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봄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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