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시신 송환 거부…부검
결과 따라 외교 갈등 증폭 불가피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 김정남이 피살된 지난 13일(현지시간) 이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는 남북의 치열한 외교 전쟁터였다.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난 16일 외교가에선 사실상 한국 외교안보라인이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부터 축적된 정보를 통해 살해된 사람이 김정남이라는 것을 확인한 데다 살해의 결정적인 단서를 잡을 수 있는 부검이 실시되도록 막후에서 외교전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 외교안보라인의 치밀한 준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김정남은 2000년대 초 북한을 나와 중국, 마카오, 싱가포르 등지를 오가며 국내외 언론에 자주 노출됐다. 2014년엔 국내 한 신문과도 프랑스 파리에서 인터뷰를 했다. 여행을 좋아하고 호탕한 성격인 김정남은 김정은 집권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해외 한식당에 자주 출몰해 정보당국 뿐 아니라 교민 등에게 쉽게 노출됐다.
공항에서 사망한 북한 국적의 사람이 김정남이라는 걸 확인한 결정적 증거인 지문도 이 과정에서 정보당국이 채취한 것으로 보인다. 한 정보당국 관계자는 "백두혈통에 대한 정보는 항상 수집해 관리하는 건 당연하다"면서 "김정남의 경우 늘 해외에서 체류하고 공개적으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호텔, 레스토랑 등에서 지문과 머리카락 등을 채취하는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남 시신의 부검 결과가 나오게 되면 북한과 말레이시아의 갈등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의 조사 결과 이번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나면 주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몇 안 되는 수교 국가인 말레이시아와의 관계가 틀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과 갈등의 골까지 깊어져 국제 외교 무대에서 입지가 더욱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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