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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 칼럼]말뫼의 눈물, 마산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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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바짝 차리자!

박희준 편집위원

박희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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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희준 편집위원]2008년 9월 '조선업 호황의 명암'이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조선업의 호황으로 남해안에 조선소가 경쟁하듯 들어서는 '십야드 러시(Shipyard Rush)'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이었다. 칼럼은 조선사들이 원가부담 상승 등으로 도산하는 업체가 속출하는 등 중소 조선업체 문제가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실업자 양산과 은행 부실 등으로 지역경제가 죽을 쑬 수도 있는 만큼 은행 측이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과 10년이 되지 않아 걱정은 현실이 됐다. 난립한 중소 조선업체들은 속속 문을 닫았다. 선박 블록을 생산하기 위해 매립된 땅은 그대로 방치 된 곳이 한둘이 아니다. 칼럼을 쓸 당시 예상하지 못한 일도 일어났다. 중소 조선소만 문을 닫는 게 아니라 대형 조선소도 문을 닫기 시작한 것이다. 경남 창원의 마산에서는 제법 큰 조선소가 높이 100m의 대형 크레인 해체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크레인은 루마니아로 갈 것이라고 한다. 크레인 해체를 보는 근로자, 지역 주민, 상인들 등 마음이 무겁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눈물을 흘리지 않다뿐이지 속으로는 절절이 울고 있다. 그렇기에 남쪽바다 항구도시 마산에서 해체되는 이 크레인을 '말뫼의 눈물'이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뫼의 눈물은 현대중공업이 2002년 스웨덴 말뫼에 있는 코쿰스 조선소에서 1달러에 사들인 대형 크레인을 해체해 운송선에 실어 바다로 나가는 모습을 스웨덴 국영방송이 장송곡과 함께 내보내면서 한 말이다. 이 크레인은 마산이 아니라 울산에 설치된 만큼 마산에서 해체되는 크레인은 '말뫼의 눈물'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 경기 부진에 따른 해운사의 발주 감소, 중국의 맹추격, 일본의 견제 등으로 붕괴하는 한국 조선의 현실을 감안하면 이 크레인은 '마산의 눈물'에서 나아가 '한국판 말뫼의 눈물'이라고 해도 현실을 오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판 말뫼의 눈물은 비단 마산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울산에서부터 거제, 통영에 이르기까지 남해안 조선업 벨트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조선업 불황으로 지역 경제는 초토화되고 있다. 아파트와 원룸 주택은 불이 꺼진 지 오래다. 식당은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린다. 부동산 값이 하락하고 지역 경제는 땅 속으로 꺼질 것처럼 침체가 심각하다.

10년 남짓 전까지만 해도 잘 나간 한국의 조선업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경영자의 탐욕과 무분별한 확장, 주무 부처의 10년을 내다보지 못하는 단견, 금융당국의 감독부재, 금융계의 단기 이익추구 등 요인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게 고질 중의 고질이다. 이런 고질은 뿌리가 하도 깊고 넓어서 고치려다간 한국경제라는 몸 전체가 죽을 정도로 심각하다. 공급과잉이 빚어낸 귀결이다. '짜구'가 난 것이다.
국어사전은 '짜구난다'를 '많이 먹어 배가 몹시 부르다'로 풀이한다. 경상도에서는 지나치게 많이 먹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더 이상 크지 않는 사람이나 강아지 등을 놀리는 말로 써왔다. 성장이 멈춰 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땅딸보가 됐다는 말로 썼다. 한국 경제, 산업, 기업을 이것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이 어디 있을까. 거의 모든 산업이 공급과잉이다. 성장해서 도약하지 못한다. 중국을 비롯한 후발 도상국들이 맹추격하면서 일취월장하듯 성장하는 데 한국은, 한국 기업은, 세상 물정에는 눈감고 안에서만 덩치 불리기에만 몰두해왔다. 정부와 금융계는 기업이, 경영자가 달라는 대로 다 줬고 정치권은 표를 비롯한 이권을 챙겼다. 좁은 한국 기준으로는 덩치가 크고 키도 커졌다. 그렇지만 한국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중국과 일본 등 경쟁국과 키를 재보니 한국의 산업과 기업들은 영락 없이 짜구난 땅딸보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경제와 한국 산업, 기업이 겪는 위기의 본질이다.

짜구 상태를 벗어나 키가 크려면 적게 먹고 운동을 하는 수밖에 없다. 다른 말로 혹독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마산의 눈물도 우리 산업과 한국경제가 다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통스런 구조조정의 과정이다. 때늦었지만 결코 허투루 해서는 안 되는 구조조정이다. 반드시 성취해내야 하는 구조조정이다. 하나 더 있다. 미래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전 세계가 4차 산업혁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은 두말이 필요 없다. 우린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가. 정부와 정치권은 관련 정책과 법안을 제대로 마련하고 있는가. 한국은 아시아 네 마리 용 중의 하나로 전 세계가 두려워하고 경이롭게 본 나라였다. 일부 해외 언론들이 비아냥하듯이 서서히 죽어가는 '끓는 물 속의 개구리'가 될지, 다시 승천하는 용이 될지는 한국이라는 좁은 테두리 저 너머를 보는 '깨어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정신 바짝 차리자!'는 개그콘서트에서만 할 말은 아니다.

박희준 편집위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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