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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바꿔봐요] 건설기술인의 눈으로 본 한국의 사회현상

최종수정 2016.12.02 09:40 기사입력 2016.12.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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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외길 건설엔지니어'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의 주문

"주범이건 종범이건 주변의 농간을 알았다면 나쁜 사람이고, 몰랐다면 무능한 사람입니다. 어느 쪽이든 대통령으로서의 격은 아닙니다. 다음에 누가 이 나라를 끌고 갈 것인가 걱정하는 것도 지금은 본인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일, 평화롭고 질서있게 권력을 넘겨주어 국민들의 자존심과 국격을 다시 세우는 일에 모든 것을 바쳐주시기 바랍니다."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저는 1949년생입니다. 저보다 50년 늦게 태어난 사람은 지금 열일곱살입니다. 저에게 동학란이나 청일전쟁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처럼, 지금 청소년들에게는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은 책으로 느낄 뿐일 겁니다. 그러나 지금의 국정농단 사태는 그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겠지요.

청소년시기의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4·19혁명 때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광화문 광장 모퉁이의 경기도청 앞에 경찰차가 불이 붙어 엎어져 있었고, 인사동 뒷골목에서 친구의 피가 묻은 광목을 들고 행진하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부터 대학교 4학년 때까지 한 해도 휴교를 거른 적이 없었습니다. 최루탄과 곤봉, 투옥, 고문사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격랑의 시대를 지나왔습니다.

1980년 5월 저는 중동 건설현장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배달된 현지 신문 1면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군모에 흰띠를 두른 게엄군이 학생을 구타하는 사진, 사체를 담은 관이 죽 널려있는 병원 앞마당 사진이 실려있었던 겁니다. 20세기 말에 대한민국에서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하다니….
지금 저는 또한번의 충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최고 권력자를 둘러싼 국정농단 사태로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아마 이 나라의 많은 중장년들이 저와 비슷한 충격 속에서 안타까움이 무척 클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최고 권력자를 둘러싼 믿기 어려운 비극적, 구태적 정치 작태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잘못 했습니다. 매우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을 옹립한 분들이나 야당 정치인들은 대통령에게 이런 사태가 올 것을 전혀 몰랐을까요?

요사이 평화롭고 질서 있게 진행되고 있는 집회는 60년대식 항쟁에 익숙한 이들의 행태가 전혀 아닙니다. 전 세계가 놀라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조그마한 부정도 눈감아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쇠몽둥이나 화염병을 들고 나오지도 않습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자기의사 표현이 이렇게 바뀐 것을 제대로 알면서 광장 앞줄에서 촛불 들고 마이크 잡고 있는 건가요? 국민들은 정치집단에게 나라살림을 맡아달라고 세금을 내고 생업에 전념하는 것인데, 국민들이 길거리로 나오도록 만들었으면 돌팔매를 맞더라도 사죄하고 ‘저희가 할 터이니 생업으로 돌아가세요’를 외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현상은 국가권력이 정치집단의 생계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과 제일야당이 장수를 서로 바꾸어 선거를 치르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 나라에 이념을 달리 하는 정치집단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지금 여의도에는 온고(溫古)에만 매달리고 지신(知新)이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출직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60~70년대 누런 노트 한 권으로 평생 교단을 지키면서 먹고 살았던 교수들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 정치판에는 시대에 맞지 않는 이념과 행태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이들에게는 4차산업혁명의 격랑에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은 차치하고, ‘나는 잘 모르니 이제 그만 하겠다’는 용기도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국회의 행태를 보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습니다. 변화에 적응할 역량도, 의지도 없음을 스스로는 알면서도, 내 조직이 나를 버리는 것이 무서워서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조작을 하고, 선전선동을 하고, 국민들을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노인들은 변화를 싫어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지혜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남의 힘을 몰아가는 방법은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살아오면서 억울한 일 많이 당했습니다. 그러나 결백을 주장하려고 일본사람처럼 할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갈 거라고 자위하면서 살아온 거지요. 시장에서 새우젓 파는 할머니도 눈물 마를 사이 없이 힘들고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셨을 거에요. 그래도 그 새우젓 냄새나는 돈이 장학금이 되어 수많은 젊은이들을 키워냈답니다.

얼마 전 서울대 총동창회신문의 논설위원이 “올해는 부끄러웠다. 사회지도층인 동문들이 학연을 핑계로 부도덕한 일을 일삼아…. 시대적 소명과 사회적 책임은 외면한 채 학벌만 좋은 천민엘리트를 키워내고 있고 그 결과가 올해 드러난 일련의 사태…”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저도 국민의 세금으로 공부한 사람으로서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지금 국회에 계신 분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억울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믿는 분이 여의도에 계시겠지요. 하지만 그런 분이라면 머뭇거리지 말고 얼른 내려오세요. 그게 그나마 나중에 자손들 얼굴에 먹칠하지 않는 길입니다. 국가와 국민을 팽개치고 있는 이 정치적 광풍이 지나가면 이 나라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서로 이해하고 껴안아주는 보다 성숙한 새 살이 돋아날 것입니다.

대통령님, 마음을 비우셨다구요. 저도 나이가 드니 지난 일들의 잘 잘못을 떠나서 삶이 마치 연극무대 같이 느껴집니다. 모든 일은 사필귀정이라고, 저지른 것이 있으면 반드시 저지른 대로, 저지른 만큼 결과가 따른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아버지 대통령이 모진 짓을 많이 했지만 착복은 안 했습니다. 리콴유도 그랬고 덩샤오핑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자식들은 권력이건 돈이건 흠집을 냈습니다. 박정희의 딸만은 아닐거라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실제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주범이건 종범이건 주변의 농간을 알았다면 나쁜 사람이고, 몰랐다면 무능한 사람입니다. 어느 쪽이든 대통령으로서의 격은 아닙니다. 다음에 누가 이 나라를 끌고 갈 것인가 걱정하는 것도 지금은 본인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일, 평화롭고 질서있게 권력을 넘겨주어 국민들의 자존심과 국격을 다시 세우는 일에 모든 것을 바쳐주시기 바랍니다.

몇 달 전 ‘펑지차이’가 쓴 ‘백사람의 십년’을 읽었습니다. 경제정책에 크게 실패한 마오쩌둥은 어린 홍위병들을 동원해서 문화대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 기간은 10년이었지만, 고통이 치유되기 까지는 앞으로도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 합니다. 권력을 잡아 자기의 정치 이념을 실현해 보려는 사회적 실험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바로 옆 나라에서 보여준 것입니다.

얼마 전 미국 역사상 가장 이상한 대선이 치러졌지만, 퇴임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담담하게 국민들에게 말합니다(Youtube 바로가기: Obama speech after Donald Trump claim US election victory) 너무 부럽더군요. 우리도 곧 그런 나라가 되길 간절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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