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루에서 금한령까지' 급랭 한중관계 무리수 연발
[아시아경제 베이징=김혜원 특파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근본은 중국과 미국 간 갈등이다. 한국은 그저 장기짝(棋子ㆍ장기말)에 불과하다. 사드 문제가 불거진 것은 한국의 국력 부족과 전략적 착오 탓이다."
텅젠췬(騰建群) 중국 국제문제연구원 미국연구소장은 최근 한 중국 매체에 '한반도 사드 배치 후 중국 안전 형세 및 대책 분석'에 관한 기고를 싣고 한국을 겨냥한 원색적인 표현을 쏟아냈다. 요지는 박근혜 정부 들어 한중 양국 관계가 급진적으로 발전했던 것은 사실이나 중미 간 갈등을 과소평가한 한국 때문에 보이지 않는 힘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망루 외교'에서 '금한령(禁韓令)'까지. 한중 관계는 사드 배치 결정을 전후로 불과 1년 새 온탕에서 냉탕으로 급변했다. 사드로 촉발된 정치적 갈등은 경제와 문화 등 전 영역으로 넓게 퍼졌다. 베이징의 한 외교 전문가는 "중국은 마치 준비라도 한 듯 크고 작은 보복 조치로 숨통을 조이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외교 전략 부재 속에 사실상 대응에 손 놓은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사드 결정에 대한 불만 표시로 상대 국가가 반박하기 어려운 비자나 관광, 한류, 통관 등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기존 관행부터 뜯어고칠 것이라는 예상은 딱 들어맞았다. 상하이 소재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통관 심사가 부쩍 까다로워지고 시간을 끌어 경제적 손실을 입히겠다는 의도가 느껴진다"며 "중국 비즈니스상 가장 중요한 관시(關係) 문화가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하소연했다.
중국은 한국 기업을 타깃으로 한 경제적 보복 조치로 맞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22일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전기차 배터리 모범 규준 인증 규정의 새로운 안을 깜짝 발표한 게 대표적인 예다. 기존 기준에 비해 리튬이온전지의 연간 생산 능력을 40배 높이고 최근 2년 동안 중대 안전사고가 없어야 한다는 신설 조항은 삼성SDI와 LG화학 등 우리 기업을 표적으로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베이징 소재 한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는 "기존 생산 능력 기준에 맞춰 이미 공장을 지은 기업의 경우 증설에만 최소 몇 년이 걸릴 것이며 무엇보다 안전사고 규정은 특정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면서 "한국 기업에는 배터리 인증을 내주지 않겠다는 중국 당국의 의지를 드러낸 셈"이라고 말했다.
중국 일각에서는 사드로 인한 분노가 한국으로만 향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반중 감정을 자극해 한국과 미국의 밀월이 더 깊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으로 한국을 장기말로 끌고 가야 중국에 유리하다는 뜻이라고 텅 소장은 전했다.
베이징 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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