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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삶터] 궁상맞은 예술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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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노모께서는 시를 쓰신다. 지난 봄 국제 규모의 작가단체에서 발간하는 문학지에 시 한 편을 기고하시고 원고료로 2만원을 받으셨다. 예전엔 3만원이었는데, 출판계가 다 그러하듯이 문학지 사정도 나빠지면서 줄어든 것이라 하셨다. 물론 액수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물 꽃다운 시절부터 간직해 오신 당신의 꿈길을 지금도 걷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 당신은 정작 막내아들이 스무 살 즈음 작가의 꿈을 키웠을 때 한사코 반대하셨다. 전업 작가의 길이 험난하다는 걸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달의 초입 무렵 예술인의 벌이 수준이 기사화되었는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충격적이었다. 예술인의 3분의 2 이상이 예술 활동으로 월 100만원도 채 벌지 못했고, 심지어는 무려 43%에 달하는 예술인들은 한 달에 채 50만원도 못되는 수입으로 살아가야 하는 실정이었다. 대부분의 전업 예술인들이 예술 투혼 이전에 극도의 가난과 먼저 싸워야 하는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 다른 일과 병행하는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71%의 비전업 예술인의 예술 관련 평균 수입은 월 47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2016년도 최저임금으로 산정한 기준 월급이 126만원에 달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정말 지지리도 궁상맞은 예술인의 삶이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사건도 불거져 나왔다. 작성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죄다 발뺌을 하는 가운데 실체는 없고 실제만 존재하는 블랙리스트가 되고 있지만, 여기저기 초청을 취소당하고, 이곳저곳 명단에서 제외된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의 주머니 사정은 더욱 나빠졌음은 불 보듯 뻔하다.

예술인의 궁상맞은 창작활동은 칼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불노동’에 해당될 터다. 자기만족 정도의 사용가치는 있을지 모르되 화폐로 매개되는 교환가치는 '0’에 수렴하는, 그래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는 ‘굳이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윤 추구라는 자본의 관점에서 볼 때 시장에서 팔리지 못하니 비생산적이고 쓸모없는 일이라는 인식은 우리 사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공공연히 이루어져 왔다.
극장에서 보고 비디오대여점에서 다시 빌려보고, 디브이디로 출시되자 아예 구입해서 보고 또 본 영화가 있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1993년도 작 『서편제』다. 소리꾼 아버지 유봉 역의 김명곤은 “그까짓 소리 하면 쌀이 나와? 밥이 나와?”며 소리 공부를 거부하는 아들에게 말한다.
“뭐여? 야, 이놈아, 쌀 나오고 밥 나와야만 소리 하냐, 이놈아? 지 소리에 지가 미쳐서 득음을 하면은 부귀공명보다도 좋고 황금보다도 좋은 것이 이 소리속판이여, 이놈아!”

그렇다! 아무리 궁상맞더라도 예술인들은 멈추지 않는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노래하고 연기한다. 비록 자본주의 시장에서 외면 받는 비생산적 노동일지라도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돈과 명예로 보상받지 못하는 부불노동일지라도 창작을 멈추지 않는다. 바로 꿈 때문이다.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는 그 믿음 때문이다. 분명 부귀공명보다 좋고 황금보다 좋은 무언가를 찾아, 때론 곰팡내 나는 지하 작업실, 골방의 좁은 책상에서, 때론 곰팡내 나는 지하 작업실과 골방 비좁은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거리에서, 지금 광화문에서.
최강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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