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초입 무렵 예술인의 벌이 수준이 기사화되었는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충격적이었다. 예술인의 3분의 2 이상이 예술 활동으로 월 100만원도 채 벌지 못했고, 심지어는 무려 43%에 달하는 예술인들은 한 달에 채 50만원도 못되는 수입으로 살아가야 하는 실정이었다. 대부분의 전업 예술인들이 예술 투혼 이전에 극도의 가난과 먼저 싸워야 하는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 다른 일과 병행하는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71%의 비전업 예술인의 예술 관련 평균 수입은 월 47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예술인의 궁상맞은 창작활동은 칼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불노동’에 해당될 터다. 자기만족 정도의 사용가치는 있을지 모르되 화폐로 매개되는 교환가치는 '0’에 수렴하는, 그래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는 ‘굳이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윤 추구라는 자본의 관점에서 볼 때 시장에서 팔리지 못하니 비생산적이고 쓸모없는 일이라는 인식은 우리 사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공공연히 이루어져 왔다.
극장에서 보고 비디오대여점에서 다시 빌려보고, 디브이디로 출시되자 아예 구입해서 보고 또 본 영화가 있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1993년도 작 『서편제』다. 소리꾼 아버지 유봉 역의 김명곤은 “그까짓 소리 하면 쌀이 나와? 밥이 나와?”며 소리 공부를 거부하는 아들에게 말한다.
“뭐여? 야, 이놈아, 쌀 나오고 밥 나와야만 소리 하냐, 이놈아? 지 소리에 지가 미쳐서 득음을 하면은 부귀공명보다도 좋고 황금보다도 좋은 것이 이 소리속판이여, 이놈아!”
그렇다! 아무리 궁상맞더라도 예술인들은 멈추지 않는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노래하고 연기한다. 비록 자본주의 시장에서 외면 받는 비생산적 노동일지라도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돈과 명예로 보상받지 못하는 부불노동일지라도 창작을 멈추지 않는다. 바로 꿈 때문이다.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는 그 믿음 때문이다. 분명 부귀공명보다 좋고 황금보다 좋은 무언가를 찾아, 때론 곰팡내 나는 지하 작업실, 골방의 좁은 책상에서, 때론 곰팡내 나는 지하 작업실과 골방 비좁은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거리에서, 지금 광화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