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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기묘한 국숫집/조동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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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그릇 국수를 먹고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서면 그곳에 처음인 듯 또다시, 국숫집은 펼쳐진다. 국숫집의 간판은 어둠을 물리치며, 어느 결에 잊어버린 나의 허기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느덧 허기는 몰려오고 나는 처음인 듯 이끌려 국수를 주문한다.

 찬 없는 한 그릇 국수처럼 어둠을 서성이며, 그곳은 물끄러미 골목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남자는 처음인 듯 여전히 국수를 말고 있고
 한 그릇 국수를 주문하면 냄비의 물 끓는 소리, 나직하게 뒤를 돌아보는 칼의 고요 역시 또다시 펼쳐진다. 나는 국수를 마는 남자의 낯익은 어깨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본다. 찬물에 국수를 헹구고 고명을 얹는 남자의 어깨가

 적막하고 평화롭게 들썩인다. 최소의 움직임으로 만들어 내는 단호함처럼, 시간은 흘러간다. 창밖에는 어둠이 가로등 주변을 캄캄하게 웅성이고 있다. 국수 한 그릇에 말아먹는 새벽이 어느새 식탁 주변에 툭툭, 떨어진다. 나의 허기를 끊임없이 배회하며

 사내의 국수는 온 힘을 다해 뜨거움을 견디고 있다. 국수를 먹고 골목을 돌아서면 여전히 처음인 듯, 그곳은 펼쳐진다. 그곳에 나의 허기는 끊임없는 최초를 거듭하고, 사내는 어제처럼, 오늘처럼 그리하여 내일처럼 국수를 말며 끝나지 않는 뜨거움을 견디고 있다.
 
[오후 한詩]기묘한 국숫집/조동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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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이젠 '혼밥', '혼술'이라는 말도 흔해져 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시세가 그렇게 변했다 한들 혼자 밥을 먹는 일은 아무래도 쓸쓸하고 적막할 따름이다. 그것도 새벽에 혼자서라면 더 보탤 말이 없을 것이다. 새벽에 '몰려온' 허기란 그러니까 단지 육체적 배고픔만은 아닐 것이며, 결코 달랠 수도 없는, 어쩌면 시인의 말 그대로 '끊임없이' "최초를 거듭"하는 그런 도저한 외로움의 징후일 것이다. "한 그릇 국수를 먹고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서면" 금세 다시 엄습하는 허기. 그런 허기가 우리 사는 세상 도처에 있다. 그래서 '밥은 먹고 사니?'라는 말이 다른 겹으로 눈물겹다. 그런데 어쩌면 말이다, 허기는 허기로 달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좀 쓸쓸한 사람들끼리 만나 국수 한 그릇씩 나누어 먹자. 그리고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지자. 헤어져 돌아가 다시 만날 사람이 있다는 그 마음 하나로 "끝나지 않는 뜨거움"을 차라리 가만히 품어 보자.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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