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 세상에는 관행이라는 것이 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고, 힘 있는 사람이 하면 죄가 되지 않지만 힘 없는 사람이 걸리면 범죄자가 되는 일들, 혹은 지금은 문제되지 않는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 범죄가 되는 일들이다.
김영란법의 정식 이름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3만원까지는 밥을 먹을 수 있고, 5만원까지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허용해주기 위한 법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공직이나 공적업무를 하는 사람은 남에게 기대어 살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사회적 제안이다.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하루에 접대비로 지출되는 돈은 270억원에 이른다. 이는 법인의 신고금액을 환산한 것이고, 기관이나 개인 혹은 신고하지 않은 검은 금액을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아질 것은 자명하다. 현실성을 고려해 한 끼 식대를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인식 안에는 사주는 사람도, 얻어먹는 사람도 어차피 당신돈은 아니지 않냐라는 인식이 포함돼 있다. 그 돈은 국민의 세금이거나 주주 혹은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기업 이윤의 일부임에도 말이다. 세상에 주인이 없는 돈은 없고, 이유 없이 남에게 돈을 주는 사람도 없다.
물론 초기에는 많은 혼란이 있을 수 있다. 법이 있어도 여전히 관행처럼 굳어져 내려오는 틀이 있기에 법을 피해가기 위한 요령들이 자기만의 노하우인 것처럼 쏟아져 나올 것이고, 법을 어겨서가 아니라 재수 없이 걸렸다는 조롱이 시작될 것이다. 경제에 위기가 초래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물론 빠지지 않고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금융실명제가 처음 등장할 때 제기된 한국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라는 주장은 기우에 불과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오세훈법이 만들어지면서 이제 봉투를 주고받는 정치인은 거의 사라졌고 그것은 관행이 아니라 범죄라는 인식이 지배하게 됐다. 세상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간다. 어제까지 그래왔다고 그게 옳은 것은 아니다.
김광진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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