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쯤 국내 한 중견 소프트웨어(SW) 기업 대표로부터 들은 얘기다. 일부에서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간의 대국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이 AI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으며 그것이 내년 예산에도 상당 부분 반영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최근 정부의 R&D 정책을 살펴보면 마치 구글과 경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벤처캐피탈(VC)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R&D 과제에는 자율주행차, AI와 관련된 것들이 있는데 이는 모두 구글이 주도하고 있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R&D 역량과 자원 또한 외국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 국내 연간 R&D 예산 규모는 13조원 안팎이다. 이 돈을 19개 부처가 나눠쓴다. 2016년 구글의 연간 R&D 비용 129억달러(15조28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이 돈으로 구글이 하려는 것을 따라 하려다간 흉내만 내고 그칠 뿐이다.
얼마 전 한 간담회에서 한 정부 출연 연구기관 관계자는 "과거에는 무슨 일이 터지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찾아와 도움을 청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최근 추세를 비춰볼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전세계적으로 기술의 발전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해외에서 주목받은 기술을 내년 예산에 반영한다면 이미 한발 늦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2일 제1차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우리 R&D 시스템의 근본적인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꼭 필요한 전략 분야 연구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민간의 창의성과 자율성에 맡기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대통령까지 나섰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R&D 예산은 '눈먼 돈'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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