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골목안 투어 떠나볼까?
23일부터 매달 둘재·넷째 토요일마다 골목길 투어 '을지유람' 운영...타일·도기거리, 노가리골목, 공구거리 등 특화거리, 맛집, 서울미래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한 때 '못만드는 것이 없는 곳' 이었던 서울 을지로.
광복후 1946년10월1일 일제식 명칭들을 일제히 개정할 때 고구려 장군 을지문덕 장군의 성에서 따와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조선시대부터 많은 관아가 배치돼 있었으며 현재도 많은 업무 빌딩과 시장·상가가 발달돼 있는 을지로는 과거 흔적과 오늘날 변화가 공존하는 장소다.
서울 중구(구청장 최창식)는 이런 을지로 골목에 숨은 볼거리와 가치, 특색있는 이야기를 체험하는 골목길 투어인 '을지유람'을 23일부터 운영한다.
매달 둘째·넷째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진행하는 '을지유람'은 중구민들로 구성된 구민해설사들 안내로 타일·도기거리, 송림수제화(서울시 선정 미래유산), 원조녹두, 노가리골목, 양미옥, 공구거리, 통일집, 조각거리, 조명거리 등을 둘러보는 코스로 돼 있다.
모두 을지로 골목의 역사문화유산, 특화거리, 맛집, 영화 촬영지 등이다. 또 을지로 골목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 디자인·예술가들의 작업장도 찾아 공방 등 체험 프로그램도 경험하게 된다.
을지유람 코스를 일주하는데 약 90분이 소요된다.
을지로 속살을 느껴볼 수 있도록 1회 당 인원은 10명 이내로 한다.
중구 홈페이지(www.junggu.seoul.kr)의 '을지유람' 메뉴에서 투어 신청을 하면 된다. 무료로 진행되며, 체험 프로그램은 별도의 재료비를 내야 한다.
◆못만드는 것이 없던 을지로
을지로는 서울시청에서 을지로3가를 경유해 을지로7가 DDP에 이르는 폭 30m, 길이 2740m의 6차선 도로다. 조선시대에는 구리빛이 나는 고개라 해 '동현(銅峴)' 혹은 '구리개'로 불렸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황금정(黃金町)'으로 칭했다.
을지로에는 공구, 조명, 미싱, 타일도기, 조각, 가구, 인쇄, 기계 등 다양한 도심산업이 밀집돼 있다. 6.25 전쟁 이후 무너진 도시 재건을 위해 집수리에 관련된 모든 것, 목재, 가구, 철물, 페인트, 도배, 공구 등이 얼기설기 서로 유기적인 맞물림 속에 자리 잡으며 급속도로 발전했다.
전쟁때는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군수품이, 섬유류가 호황일때는 을지로 미싱상가가, 6.25 이후의 도시 재건을 위해서는 을지로 조명과 타일도기, 가구가 호황을 누렸다.
◆을지로 타일위생도기 특화거리
을지로에는 현재 140여개 타일도기 상점이 모여 있는 타일위생도기 특화거리가 있다.
6.25 전쟁 당시 3개였던 타일가게는 이후 도시의 재건을 위해 집수리와 관련된 것들이 한데 자리잡게 되면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특히 1961년 일부 수입하던 타일을 수입금지 시키는 당국의 정책에 힘입어 타일제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한국요업이 66년 현대화된 소성공장을 만들어 68년부터 국내타일을 생산하면서 국산타일 대리점이 생기게 됐다. 건축이 현대화되고 욕실문화의 발달로 위생도기, 수전까지 같이 자리하게 되면서 오늘날 타일·도기의 메카로 자리잡게 됐다.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던 을지로 공구거리
청계천 수표교~관수교 남단 350m에는 전국, 나아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권 일대를 거래 상대로 하는 530여개 공구상점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한 때 설계도만 주면 탱크도 만든다는 '공구의 종가'다. 적은 양으로 필요한 모든 것들이 부근에서 손쉽게 조달돼 도면 하나만 들고 가면 그 자리에서 부품들을 깎아다가 물건을 만들어준다.
6.25 직후 청계천변에 터를 잡기 시작한 공구상가는 61년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자리잡았다. 월남전은 이 일대에 특수를 불러 일으켰다. 이곳에서 큰 상인들은 경기도 시흥이나 서울 남서쪽 구로 등으로 분가해 또다른 공구거리를 만들어 냈다.
공구상가 가게들은 도매상이자 소매상이다. 작은 못과 전선, 드라이버 같은 생활공구도 다양하게 판다. 못 한봉지, 펜치와 니퍼, 가위 등 소품도 판다. 가격은 몇천원에서 비싸 봤자 1만원 안팎이다. 할인점이나 대형 생활용품점보다 더 싸다.
공구거리 주변은 산업근대화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어 영화촬영 장소로도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와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이 이 곳에서 촬영됐다. '감시자들'(감독 조의석·김병서, 2013) 의 주촬영지도 바로 이곳이다.
공구거리 일대를 지나다보면 익숙하지만 생소한 단어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빠우, 빠킹, 로구로, 잔넬 등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영어 혹은 일본어로 된 단어들이 변모하면서 남겨진 잔해들이다.
'로구로'는 녹로(??) 일본식 발음으로 목재, 도자, 금속 등 가공재료를 회전축에 부착시키고 회전을 이용해서 성형하거나 표면을 가공하는 기술이다. 일반적으로 물레 또는 선반이라 부른다.
'빠우' 어원은 버프(buff)다. 금속 소재의 표면을 매끄럽고 광이 나도록 연마제를 바르고 문질러 광택을 내는 작업이다. '빠킹'은 Packing이 어원으로 이음매 또는 틈새 따위에 물이나 공기가 새지 아니 하도록 하는 장치다. 고무나 금속 등으로 제작한다.
'시보리(しぼり)'는 일본어로 '눌러 짬'이란 단어다. 원형 금속판을 선반 틀에 고정시켜 고속회전하면서 금속막대인 제작도구로 눌러가며 모양을 만든다. 대량생산방식의 프레스금형 제작과는 달리 시보리 금형은 소량 제작하는 가공법이다. 금속으로 된 조명 갓, 냉면그릇, 밥그릇 등 반구형이나 고깔 모양을 만드는 기술이다.
◆을지로 조명거리
을지로3가부터 4가에 걸쳐있는 조명거리는 을지로의 건축자재 관련 업종중 뒤늦게 자리잡았다. 현재 210여개 조명상가가 위치해 있으며, 70~80년대를 을지로 조명상가 전성기로 꼽는다. 전국의 실내장식, 건축관련 업자들이 허리에 현금을 차고 와서 조명을 사갈 정도로 한국의 조명중심지였다. 지금도 다양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을지로 조각특화구역
을지로3가역과 중구청 사이인 창경궁로 일대에는 360여개 조각금형 점포가 집중돼 있다.
을지로 조각(금형)은 유통 중심인 을지로의 다른 산업과 달리 제조 중심으로 자체생산이 81.5%를 차지한다. 전성기였던 60~70년대는 수작업으로 금형을 만들어 제품을 찍어내 수출, 1mm도 안되는 활자를 징과 망치로 만들어낸 고도의 수출역군 숙련가들이 아직까지 활동하는 곳이 바로 을지로다.
2000년대 들어 컴퓨터의 보급으로 컴퓨터 가공업체가 늘어나면서 예전의 기술력은 퇴화하고 인력이 감소, 지금은 3D 프린팅을 활용한 금형설계 등을 도입하여 거듭나고자 노력 중이다.
◆오래된 맛집들 많아
을지로3가역 인근에 위치한 '송림수제화'는 1936년 송림화점으로 개업, 4대에 걸쳐 수제화를 만드는 가게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수제화 업체 중 가장 오래된 집으로 석고로 발모양 본을 떠서 맞춤제작을 한다. 6.25 전쟁 직후 영국군 군화를 개조해 한국 최초의 등산화를 만들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지난해 12월23일 서울시의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원조녹두'는 오래된 노포집으로 15종류의 전은 각각 맛이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
원조녹두집이라고 할만한 가치와 세월의 맛이 정겨운 집이다. 현재도 블로거들에 의해 많이 알려졌지만 을지로 상권이 활발했던 시절부터 주변 상인들이 줄서서 먹던 집으로 유명하다.
'양미옥'은 '대통령 단골집'으로 유명한 양과 대창 전문점이다. 보기에도 두툼한 양과 독특한 양념이 이 집의 특징으로 양과 대창은 빨갛게 양념이 돼 나온다.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통일집'은 1969년 개업해 2대째 40년 이상을 지켜온 전통있는 식당이다. 을지로 공구상가 골목에 위치해 외관은 허름해 보일 수 있지만 한자리에서 오랜 세월을 변함없는 맛으로 내주는 고마운 식당이다. 질 좋은 암소한우의 등심만을 단일 메뉴로 판매, 점심에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판매하고 있다.
이외 설렁탕집으로 유명한 이남장, 군만두로 유명한 오구반점, 평양식 냉면으로 이름난 을지면옥, 돼지갈비 참맛을 알 수 있는 안성집, 순댓국과 머리고기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전통아바이순대 등이 투어 코스에 있어 오래된 맛집들을 순례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서울미래유산인 을지로 노가리 골목
서울시의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노가리골목은 퇴근시간 무렵 서서히 골목의 상점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면 이 일대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일대 호프집들이 골목들을 독차지하는데 야외까지 꺼내놓은 테이블은 내려놓기 무섭게 손님들로 붐빈다. 앉자마자 주문도 받지 않고 인원수대로 노가리와 생맥주를 척척 내놓는다.
이 골목에는 13개 호프집이 있는데 골목 시작은 을지OB베어다. 당시 OB맥주가 처음 생맥주를 출시, 가맹점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OB맥주 2호점을 연 것.
두 번째로 생긴 곳은 뮌헨호프다. 전에 양복을 만들었던 대표가 기성복이 나오면서 경제사정이 어려워졌고, 을지로에 왔다가 OB베어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넘치는 것을 보고 시작했다고 한다.
만선호프는 한국의 옥토버페스트라는 별칭을 가진 이 골목의 대표 호프집이다.
우리나라에서 맥주가 가장 많이 팔린다는 곳이다.
또하나의 을지로 명물인 골뱅이골목에는 1960년대 말부터 골뱅이를 파는 식당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구멍가게에서 골뱅이통조림에 쥐포를 찢어 넣고 양념을 해서 내놓던 것이 현재 골뱅이무침의 원조다. 국내산 골뱅이통조림 하나를 통째로 따서 마을과 고춧가루, 대구포와 파채를 함께 내는 것이 을지로 골뱅이 특징이다.
골뱅이무침의 매운 맛을 중화시키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달걀말이가 필수로 패키지처럼 따라 나오는데, 필요한 만큼 무료로 리필해주는 것도 특징이다.
◆빈점포 임대해 청년들의 창작공간으로 제공
중구는 을지로내 산림동 빈 점포를 임대, 청년들에게 창작공간으로 제공하는 '을지로 디자인예술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6개소에 8개팀이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코스에 포함된 을지4호인 '써클활동'은 폐자전거로 각종 인테리어 소품을 만드는 작업실이다. 1층에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으니 둘러봐도 좋을 듯. 인터넷 소품 쇼핑몰 '텐바이텐'에서 판매할 정도로 아기자기한 제품이 많다. 전시장에서 직접 살수도 있다.
을지5호인 '이현지_을지로 기록관'은 언제 바뀔지 모를 을지로의 일들을 기록하고 전시하는 곳이다. 지금은 붓글씨 간판들을 사진에 담아 사진전을 준비중이다.
을지1호인 'Public Show'는 도자기를 만드는 예술팀이다. 최근 인근의 조명상가랑 연계해 조명작품을 개발, 판매중이다. 가게를 둘러보고 포토존에서 사진촬영도 할 수 있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을지로는 과거 우리나라 근대화의 역사를 바꾼 산업역군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을지유람을 통해 을지로의 참멋을 느껴보고 도심재창조라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을지로 일대 도심산업이 유지 발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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