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문화프리즘] 협궤열차를 타고 떠나다
[아시아경제] 시인 윤제림과 정광호, 동화작가 백미숙을 지난달 24일 서울 필동에서 만났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그리고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경계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로질러 오늘에 도착한 사람들이다. 잔을 부딪치니 과거는 어제인 듯했고 내일은 이미 본 듯했다.
정광호가 '기시감'이라는 말을 꺼냈다. "베네치아에 갔을 때의 일이다. 생뚱맞게 학창시절 친구 생각이 나더라. 그 전까지 나는 한 번도 그 친구를 생각한 적이 없다. 5분 뒤 그와 마주쳤다. 그런 경험을 자주 한다." 하지만 이건 기시감이 아니라 신기(神氣)다. '자리' 깔아야 한다.
나는 이스탄불에서 기시감을 경험했다. 아야소피아에 갔을 때, 잘 아는 곳에 오랜만에 간 기분으로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2층에 올라가 대리석 벽에서 뜯어낸 십자가의 흔적을 보았을 때, 난간에 기대 1층을 내려다볼 때. 기시감이란 전생(前生)이 현재를 향해 보내는 신호일까.
여러 해 전에 잡학(雜學)에 밝은 친구가 이것저것 묻더니 나의 전생이라며 설명해 주었다. "네가 마지막 전생에 태어난 곳은 헝가리였어. 서기 800년에 태어났네. 지도를 만들고 점을 치고 별자리를 살피는 사람이었어."
서기 800년이라면 로마의 판노니아 속주가 사라진 지 400년, 마자르족이 오늘날의 헝가리를 세우기 100년 전이다. 판노니아는 훈족이 지배했을 것이다. 한때 일리리아 사람들이 살았고, 켈트족이 종횡무진한 땅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지도를 만들고 별자리를 살펴 점을 쳤다면, 나는 어느 인종에 속했을까. 조용히 고향을 떠나 콘스탄티노플까지 갔을까. 거기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스탄불에서 오래된 골목을 여럿 기억해 냈으니까. 1200년이나 뒤에.
나는 1층을 내려다보는 대리석 난간에 누군가 못 같은 물건으로 파낸 글자들을 발견했다. 그리스 문자였다. 거기서 아마도 영원한 사랑의 다짐이었을, 징표(♡)를 보았다. 그 징표 앞에서 윤후명의 소설 '누란의 사랑'을 떠올렸다.
"그 사랑은 끝났다. 그리고 누란에서 옛 여자 미이라가 발견된 것은 다시 얼마가 지나서였다. 그 미이라를 덮고 있는 붉은 비단 조각에는 '천세불변(千世不變)'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언제까지나 변치 말자는 그 글자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
나는 가끔 주말 오전에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다가 윤후명을 본다. 2014년 여름, 효자동에서 내린 그가 무언가 골똘히 내려다보았다. 뭘 보는지 궁금했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그곳에 가 보았다. 맨홀 뚜껑. 테두리에 'SEOUL METROPOLITAN'이라고 씌어 있었다.
윤후명은 전생의 추억에 사로잡혔을까.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그의 소설은 '협궤열차'다. 일 년 전, 회사를 그만둔 후배를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이 책을 사 주었다. 그는 남미 여행을 하겠다고 했다. 체 게바라 얘기도 했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
후배는 한동안 '페이스북'을 열심히 했다. 가끔 내가 올린 글과 사진에 흔적도 남겼다. 그가 남긴 마지막 댓글은 '저도요'였다. 그리고 발길이 끊어졌다. 페이스북의 대문을 열어둔 채 조용히 떠난 것이다. 협궤열차를 타고, '빈 조개껍데기 같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그는 페이스북 대문에 제 명함을 사진 찍어 걸어 놓았다. 명함에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내 삶에서 만난 사람들의 총체다.” 덜컹거리는 협궤열차에 이승의 짐을 들고 탔다면, 가방 속 어딘가 나의 인연도 덜그럭거리고 있을까?
내일이면 49일. 그는 우리 삶의 맞은편 언덕에 닿을 것이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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