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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국회선진화법의 사회적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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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진지한 정책 토론과 타협이 무르익을 줄 알았던 정치권의 실험은 사실상 실패했다. 선진 국회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담아 '국회선진화법(2012년 5월 개정 국회법)'이라는 별명도 붙었지만 몸싸움 방지라는 1차적인 목적만 달성하는데 그쳤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법안 처리는 신기루와 같았다. 몸싸움이 사라진 19대 국회는 오히려 '법안 가결률 최저'라는 최악의 성적표만 받게 됐다.

선진화법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믿음'이다. 대화를 통해 상대의 믿음을 확인하고 합의 처리한다는 게 선진화법의 작동 원리인 것이다. 하지만 지난 4년의 경험에서 확인한 것은 불신이었다. 상대방를 믿지 못하니 대화나 타협은 불가능했다. '정치권이 선진화법에서 거둔 성과는 결국 불신일 뿐'이라는 자조섞인 반응까지 나올 정도다.
국회선진화법의 실패는 이미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부터 예견됐다. 선진화법에서는 법안 처리를 위해 재적의원 과반 참석, 참석의원 가운데 60%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 이는 소수당과의 합의가 필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정치문화의 선진화를 기대한다는 의미가 담긴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정치문화는 그 기대에 못미쳤다.

19대 국회의 불신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한 여야 합의는 야당의 입장 번복에 손바닥 뒤집 듯 파기됐고 여야가 팽팽히 맞서는 또 다른 법안의 경우 여당이 일부 조항을 삭제하겠다는 입장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믿지 못해 의견접근을 이루지 못하는 실정이다.

야당의 제안을 여당이 믿지 못하는 정반대의 사례도 있다. 2014년 법안의 빠른 처리를 위해 야당은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복수로 두자고 제안했지만 여당은 반대했다. 야당이 상임위내 모든 법안소위의 위원장을 여당이 맡아도 된다고 밝혔지만 여당은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두 선의를 갖고 받아들였다면 결과가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일부 쟁점법안이 처리됐다면 지금은 나머지 쟁점법안을 논의했을 것이고 법안소위를 당초 뜻대로 2개 이상으로 운영했다면 법안 처리 속도 역시 빨라졌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야 지도부 모두 서로를 향해 "믿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지낼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신뢰가 사라졌다는 뜻은 의미심장하다.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미치는 정치가 불신의 장이 된다면 개인 역시 영향을 받을 게 뻔하다. 사회를 믿지 못하는 개인은 정치와 정책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스스로를 보호하는데 열중한다. 이는 비리와 부정부패로 이어진다.

불신이 야기하는 사회적 대가(代價)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규모를 무시할 수 없다. 2014년 한 연구기관은 불신과 갈등의 사회적 비용이 최대 246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한해 예산의 3분의2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다. 그리고 국회 역시 이런 비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마한 비용 보다 우려스런 점은 또 있다. 이대로 가다간 20대 국회 역시 19대 국회와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기력한 국회가 눈앞에 선하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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