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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두 친구의 죽음에 그의 선택이

최종수정 2016.08.08 15:28 기사입력 2016.01.1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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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한밤중 날벼락입니까 / 신문사 사회부장의 다급한 전화에 / 목간통에서 수건도 비누도 떨어뜨렸습니다 / 눈물 한 방울 나오지 못한 채 / 가슴이 꽉 막혀 / 어쩔줄 몰라라 했을 따름입니다." 시인 고은은 1994년 1월 19일 한겨레 1면에 이렇게 썼다. '이 무슨 날벼락입니까'라는 제목에 '늦봄 문익환선생님을 조상하면서'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이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진 지 이제 22년이 지났다. 18일은 문익환 목사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목회자이자 성서학자, 시인, 사회운동가였던 문익환 목사는 1918년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났다. 용정에서 학교를 다닌 그가 윤동주, 장준하와 친구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왼쪽부터 학창시절의 장준하, 문익환, 윤동주

왼쪽부터 학창시절의 장준하, 문익환,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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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가 쓴 시 '동주야'에는 28살에 세상을 떠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이 시에서 "너는 스물아홉에 영원이 되고 / 나는 어느새 일흔 고개에 올라섰구나 / 너는 분명 나보다 여섯 달 먼저 났지만 / 나한텐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 너의 영원한 젊음 앞에서 / 이렇게 구질구질 늙어가는 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할 수야 있다만 /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 너마저 늙어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 /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라고 썼다.

그가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도 친구 장준하의 죽음 때문이었다. 장준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1975년 8월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장준하의 죽음을 박정희 정권에 의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친구의 죽음 이후 문익환 목사는 1976년 당시 박정희의 유신통치에 맞서 명동성당에서 김대중, 함석헌, 윤보선 등과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했으며 이 사건으로 처음 구속됐다. 이후 수차례 옥고를 치른 문 목사는 1989년 통일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는 믿음에 따라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방북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위반 혐의가 적용돼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93년 3월 가석방됐었다. 이후 강연 등의 활동을 하다 채 1년이 안 돼 심장마비로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전했다. 늦봄통일맞이는 문익환 목사 서거 22주기 추도식을 18일 오후 2시 경기 성남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개최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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