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앞둔 후배에게 들려주는 부부학 개론

[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호랑이 한테 혼났군." 세종시에서 함께 근무하던 다른 신문사 후배 K가 주말에 장가를 간다. 신부와 지난 주말로 예정된 상견례가 깨졌다. 양가 부모도 아니고 친한 친구도 아닌 업계 선배들과의 상견례라니. 그렇지 않아도 준비할 게 많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신부에게 또 하나의 부담일게다. 점심 약속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카톡이 왔다. "신부와 옷 사러 백화점에 가야 합니다. 부득이 오늘 약속은 취소합니다." 다들 신랑의 처지를 흔쾌히 이해한다.


 'Tiger is comming(호랑이가 온다)' 모임 멤버들과 신혼부부를 이어주는 노래다. 본래 제목은 '아내가 온다'다. 멤버 중 S가 작사작곡한 노래다. 그런데 K가 'Tiger is comming(호랑이가 온다)'으로 제목을 바꿨다. 아내는 호랑이라는 얘기다. 유부남들이 마누라를 무서워하는 것을 은근히 비꼰다. 다 끄떡 끄덕해서 그렇게 부른다. 음악강사인 신부도 이 노래를 마음에 들어한다. 상견례 모임이 추진된 이유 중 하나다.

 언달래 장만들어
 콩나물밥 비벼먹고
 얼른 장보러 가야겠다
 봄나물을 가을에 먹일 순 없지


 러시아에서 온 코다리
 간밤 술안주 고맙다만
 너도 역시 탈락이다
 내 아내는 코다리찜 안 좋아해

 둘이서만
 오붓하게 밥해먹고
 신나는 밤 보내보자
 낼 아침엔 청산구경 함께 가야지


 아하! 가을이다
 불타는 여름은 갔다
 이젠 가을이다
 아직도 가슴은 탄다


 "어때요? 쥑이죠?" 중년의 기러기들에게는 정말 죽이는 노래다. 냉장고에 수북히 쌓인 철 지난 음식을 먹으면서 한 잔 술로 밤을 달랜다. 아내를 기다리며 요리를 준비하고 신나는 밤을 꿈꾼다. 가을이란 계절 속에 자신의 기울어 가는 삶을 비춰본다. 객지에서 고생하는 주말 부부의 애환이 절절이 닮겨 있다. 노래가사 속의 아내는 호랑이가 아니다. 그런데도 다들 아내는 호랑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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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호랑이는 따로 있다. S는 고민이 많다. 음악을 좋아하고 잘 한다. 그런데 돈이 된다는 자신이 없다. 귀농에 관심이 많다. 은퇴 뒤 음악을 선택할 지, 귀농을 선택할 지 한 가지를 해야 할 때다. 그래야 이제부터라도 준비를 할 수 있다. S는 노래하는 농부를 선택했다. 사정이 좋은 편이다. 다른 또래들은 더 준비가 안 돼 있다. 은퇴시기는 점점 다가오는데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뭐 먹고 살지?'라는 원초적 고민에서 맴돌고 있다. 경제적 문제, 돈이 가장 무서운 호랑이다. 몸 담았던 조직을 떠나면 호랑이 말고도 온갖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 속의 양 신세다.


 왜 아내가 호랑이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지은 죄가 많아서란다. 무슨 죄를 지었느냐는 말에는 다들 묵묵부답이다. 추측해 본다. 보증섰다 돈 때이기. 사업하다 망하기. 딴 짓 하다 들통나기. 아니면 의심스러운 행동을 반복하기. 도박 또는 술. 다들 자신은 지은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나도 지은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그래 잘못이 좀 있다 치자. 그래도 그 눈빛은 뭐지? 무슨 이유지? 남자가 다 죄인은 아니잖아. 아내도 자잘한 잘못을 많이 하잖아. 근데 왜?
 태생이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존 그래이는 저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본래 남자는 화성인이고 여자는 금성인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언어와 사고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명쾌하게 남녀관계를 설명했다. 한 발 더 나가자. 여자는 호랑이로 태어났고 남자는 늑대로 태어났다. 그런데 남자는 끽해야 늑대인데, 여자는 고양이인줄 알았는데 호랑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진짜다.
 후배가 약속을 펑크낸 이유다. 후배는 여친을 예쁜 고양이로 생각했다. 음식과 음악을 공유하는 선배들과 피앙새의 만남을 섣불리 추진했다. 후배는 여친의 일정을 감안해 명동 근처에서 점심을 할 생각이었다. 근데 한 사람이 선약을 이유로 시간조정을 요구했고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싸운 게 틀림없다. 여친이 호랑이로 돌변해 앞발로 툭 치니까 단박에 그로기 상태가 됐다. 틀림없다.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 여친이 몸이 아프다고 했다가, 미장원을 가야한다고 한다. 상당히 충격을 받고 얼떨떨한 상태다.
 백화점에 여친을 따라간 K가 연이어 카톡을 날린다. 약속을 깨서 미안했나 보다. "두 바퀴 돌고 있어요" "또 백화점이예요" "이틀째 돌고 있어요" "남자에게 백화점은 무간지옥인가봐요" 선배들이 호랑이 마나님에 쩔쩔매는 것을 은근히 비웃던 후배가 너무 빨리 아내를 두려워 한다. 고양이는 호랑이가 됐는데 은근히 마초기를 자랑하던 후배는 늑대에서 반려견으로 진화한 느낌이다. 나는 절대 두 바퀴 돌지 않는다.
 S가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려다 잘 안됐다. 가족들과 아주 가까운 지인들만 모여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다. 만남도 무산되고 축가도 성사가 안돼 결혼후 집들이를 추진하기로 했다. 신부도 참가하는 요리배틀을 하고 싶다. 근데 문화가 좀 다르다. 우리 때는 남자가 집에 친구를 들이는 게 아주 자연스러웠다. 젊은 부부들은 다르다. 40대 초중반의 만혼이지만 어떨지 모르겠다.
 "어이 K!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수 있어. 우리 봐. 흥부네처럼 알콩달콩 잘 살잖아." 후배가 호랑이굴에서 그나마 야성을 지닌 늑대로 버티고 있는 지, 아니면 반려견으로 진화했는 지는 집들이의 성사 여부가 보여줄 거다.


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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