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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골목은 무슨 뜻일까(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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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골목이란 말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골과 목은 나눌 수 있는 말일까. 길목이라는 말이 있다. 이건 분명히 나눠지는 말이다. 길과 목. 길목은 큰 길에서 좁은 길로 들어가는 어귀를 말한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어귀가 중요한 통로라는 점이다. 목은 좁은 길로 들어간다는 의미와 중요하다는 의미를 함께 지닌 말이다. 이 목은 신체의 머리와 몸통을 잇는 잘쏙한 그것에서 빌려온 말인 듯 하다. 목은 숨이 오가는 곳이고 섭취한 음식이 오가는 곳이니 중요하기 짝이 없다. 오죽하면 목숨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길이 좁아지니 목의 특징을 닮았다. 그런데 그곳이 어딘가에 가기 위해서 꼭 지나가야할 곳이니 중요하다. 길목은 길의 목이다. 길목에서 갈라져 나온 말이 나들목이나 건널목이다. 나가고 드는 길목이 나들목, 건너는 길목이 건널목이다. 길목은 반드시 마을과 관련되어 있을 필요는 없다. 길의 중요한 위치면 된다. 목이 또 쓰이고 있는 곳은 갈림목이다. 길이 갈라지는 분기점을 의미한다. 이순신이 싸웠던 명량해협을 울돌목 혹은 노돌목이라 불렀다. 이 또한 바다가 좁아지는 지점(해협)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골목은 다르다. 큰 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으로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이 골목이다. 좁은 길은 소롯길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아주 좁은 길이다. 논둑길같은 길이나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비좁은 길을 가리킨다. 골목길과 비슷하게 쓰이는 말에는 고샅길이 있다. 그냥 고샅이라고도 한다. 여기 뭔가 열쇠가 있을 듯 하다. 고샅길은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말하거나 골목 사이를 의미한다. 고샅은 골과 샅이 붙은 말이 아닐까 싶다. 골은 골짜기일수도 있고 고을(마을)이 줄어든 말일 수도 있다. 샅은 사타구니라는 말이다. 사타구니를 의미하는 골짜기 안쪽이 바로 고샅이다. 고샅길은 그 골짜기 안쪽으로 난 길이다. 골짜기는 대개 마을의 담으로 이어진 길벽을 의미한다. 고샅길은 골 사잇길이 변한 말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의미는 비슷하다. 고샅길은 그러니까, 담이 양쪽에 늘어서 있는 그 가운데로 난 좁은 길이다. 골목과 상당히 비슷하게 쓰이는 말인 것을 알 수 있다. 말의 쓰임새를 보자면, 골목은 살아남았고 고샅길은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골목과 자주 연결지어 쓰이는 말로, 어귀라는 말이 있다. 골목 어귀, 동네 어귀, 마을 어귀 따위로 쓰이는 말이다. 어귀는 드나드는 목의 첫머리를 말한다. 골목을 설명할 때 큰 길에서 좁은 길로 들어가는 어귀라는 말을 쓴다. 어귀는 길이 달라지는 입구를 말하는 표현인데, 정확하게 지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근처라는 의미를 담는다. 동네 어귀는 동네로 들어가는 지점 부근을 의미한다. 골목과 어귀는 다른 점이 있다. 어귀는 입구 부근을 가리키지만 골목은 마을 안쪽의 길을 가리킨다. 어귀는 골목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골목은 어귀의 일부가 될 수 없다. 골목을 벗어난 길을 우린 한길이라고 불렀다. 한길은 큰 길이란 의미일 것이다. 행길이라고도 말했다. 이것은 한길을 오분석하여 쓰인 표현이 아닌가 싶다. 사람이나 차가 다니는 넓은 길이 한길인데, 이 한길을 벗어나 동네로 들어오면 길이 좁아지고 집과 집 사이로 길이 흐른다. 이 길이 골목길이다.


골목을 굳이 분석하면, 골짜기나 고을을 의미하는 골과 그것이 좁게 통과하는 형태를 묘사한 목이 합쳐진 말이다. 골목은 마을 속의 길목들이 이어지고 갈라지고 합쳐지는 그 흐름의 전체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대개 좁으며 담과 벽들 사이에 있으며 사람들이 자주 통행하는 곳이다. 요즘 들어 골목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집과 집 사이에 존재하는 이 좁은 길에서 벌어지던 다양한 인간관계와 일상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집과 집 사이 골목이 존재하지 않으면서, 그 관계의 공간과 함께 관계가 사라졌다. 아파트처럼 벽을 딱 붙여, 층간 소음으로 이웃전쟁을 벌이거나 아예 성벽같은 옹벽을 쌓고 차들만 왕래하도록 해놓았다.


저 향수와 추억을 우려내어 우리에게 심정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말 중에, 골목상권이란 말이 있다. 좁은 길가에서 장사를 하며 먹고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큰 장삿꾼들에게 갑자기 손님들을 다 빼앗기는 상황이 오자,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머릿띠처럼 둘러맨 말이 골목상권이다. 좁은 골짜기같은 길목을 지키며 손님을 기다리던 사람들. 그 목이 달아날 판이니, 그들에게 골목은 한사코 지켜야할 목숨같은 것이 되었다. 냉정하게 시장 원리로 보자면 좋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는 큰 유통업체의 등장은 소비자를 기쁘게 하는 일이겠으나, 저 옛날 구멍가게들이 목에 걸리고 눈에 밟힌다. 골목상권을 살리면, 우리는 예전처럼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을까. 그건 이미 아니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골목에서 너무 멀리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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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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