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인수 결단 내린 최태원이 그리운 SK

하이닉스 '어닝서프라이즈'에 가려져 있지만 통신·에너지도 매출 뒷걸음
총수 부재로 대형 M&A 등 과감한 위기 극복책 못써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SK그룹을 이끌어 온 에너지, 통신 등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나마 최태원 회장이 오랫동안 공 들여 온 SK하이닉스 , 석유개발사업이 선전하고 있지만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반도체, 석유개발 등 신규사업에 대한 최 회장의 투자용단 등이 주력 계열사에서도 필요하지만 최 회장의 부재가 1년 반 정도 이어지고 있어 SK그룹의 '위기론'이 팽배해지고 있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은 2분기 5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분기 하락세를 이어오다 급기야 적자로까지 악화된 것이다. 또 이번 주부터 발표될 예정인 SK네트웍스,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들 역시 영업이익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거나 정체 현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상반기 2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낸 SK하이닉스가 없었다면, 최 회장이 인수 용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SK그룹은 그야말로 '좌초' 위기에 직면했을 상황이다.

앞서 1분기에도 SK그룹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들 영업이익이 8482억원에 그쳤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이었던 2009년 1분기 영업이익(1조6836억원)의 절반에 불과한 수준이다.

SK그룹 관계자는 "2009년 금융위기보다 경영 여건이 나빠진 데다 최 회장마저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 일각에서 그룹 미래를 불안해하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위기감은 그룹 근간을 이루는 에너지와 통신 대표 계열사의 실적 부진에서 비롯된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2분기에 매출 16조4천937억원에 영업손실 503억원을 기록했다. 정제 마진 하락과 환율 급락, 화학사업 수익성 악화라는 3중고가 겹쳐진 결과다.

그나마 석유개발사업 부문에서 전분기보다 영업이익이 증가하며 적자 폭을 줄일 수 있었다. 최 회장이 오랫동안 공 들인 결과가 나온 셈이지만 최 회장의 부재 속에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SK텔레콤 역시 2분기 실적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장 기대치인 영업이익 6000억원선에 못미치는 5400억원선의 영업이익 전망이 나오고 있다.

수년간 이어지고 있는 SK텔레콤의 성장 정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인수합병(M&A)이나 사업구조의 근본적 재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으나 이 역시 총수의 부재로 인해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최 회장의 부재가 불안요소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공격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SK하이닉스의 실적 호조 지속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SK는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비롯한 주요 관계사 최고경영자(CEO) 30여명이 1박2일 일정으로 비공개 워크숍을 갖고 위기 극복을 위한 '끝장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메모를 통해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난국을 타개할 해법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그룹의 캐시카우가 된 SK하이닉스 인수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총수 부재 속에 추진하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위기를 타개할 해법은 그룹 총수의 판단과 결정이 필수적"이라며 "현재 최 회장의 부재로 인해 발생한 SK의 위기가 우리나라의 경제 전반에 부정적 여파를 몰고 올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우려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