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리가 박근혜정부 공무원들의 받아 적기를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상징하는 상명하복 식(式) 국정운영 스타일, 토론 없는 일방적 지시 혹은 불통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데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단골 지적을 수용한 것이 과연 마음속 깊이 그 내용을 납득하고 받아들인 결과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받아들일 만한 단서는 최근에도 있었다.
박 대통령은 후임자가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면직시켰다. 곧 바뀔 장관으로서 국무회의 등 공식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으니 그에 대한 배려로서 그렇게 했다는 청와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박 대통령이 중앙부처의 업무공백보다 장관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리도 없다.
박 대통령이 장관들의 대면보고를 받겠다는 것은 일방지시가 아닌 토론에 의한 정책결정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고 말하는 장관이 미움을 사는 정부에서 진정한 토론은 기대할 수 없다. 대면보고가 이루어진다 해도 이런 식이라면 서면보고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세종시에서 청와대로 이동하는 장관의 소중한 업무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22일 박근혜정부 2기 내각의 첫 국무회의가 열렸다. 장관들은 박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받아 적지 않았다. 이것도 변화의 조짐인가 싶었지만 거리가 멀었다. 대통령은 말하고 장관들은 고개를 떨군 채 받아 적는 모습이 불통의 상징처럼 거론되자 청와대는 회의 후 장관들에게 속기사가 받아 친 발언록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제 받아 적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지 그들이 소통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오히려 윗분이 말씀하시는데 적는 척도 하지 못하게 된 장관들은 그 자리에 앉아있기 불편했을 것이다. 겉모습만 바꿔 새롭게 보이려는 것이라면 차라리 장관들에게 받아 적기를 허하는 편이 낫겠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