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열두 개 도시에서 열린 64경기. 드라마를 쓰는 데 한 달이 걸렸다. 대회는 무난하게 운영됐고 당초 우려했던 안전사고나 시위로 인한 불상사는 없었다. 한국으로서는 근래 보기 드문 악몽의 월드컵이었지만.
▲무난한 월드컵 = 파업이나 시위에 따른 비행기 결항, 지연 사태 등이 벌어지지 않았다. 일본의 프리랜서 기자 모토가와 에츠코는 지난 12일 '스포츠나비'에 실은 칼럼에서 "상파울루 버스터미널에서 일본의 베이스캠프를 여러 차례 왕복했지만 한 시간 이상 걸린 적이 한 번뿐이었다. 열 차례 탑승한 비행기도 모두 제 시간에 도착했다"고 했다.
▲위험한 월드컵 = 경기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강도, 절도 사고가 심심찮았다. 특히 북부 해안 지역에서는 소매치기 범죄가 하루 평균 100건 정도 발생했다. 사우바도르 해안도로에서 소매치기를 피하다 팔을 다친 모토가와 기자는 "전반적으로 빈부 격차가 심해 언제 어디서 도둑을 만날지 모른다"고 했다. 브라질이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1-7로 진 뒤 사고는 더 잦아졌다.
영국 BBC에 따르면 상파울루에서는 버스 다섯 대가 방화로 전소됐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 나선 경찰이 다쳤다. AP통신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일부는 국기를 불태웠다"고 했다.
▲악몽의 월드컵 =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에 도전한 한국 축구는 16강은커녕 1998년 프랑스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돌아왔다. 홍명보(45) 감독은 지휘봉을 내놓아야 했다. 선수 선발 원칙을 깬 '의리축구'가 저조한 성적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훈련 기간 중 부동산을 사들이고, 브라질에서 탈락이 확정된 뒤 회식을 한 사실이 드러나 궁지에 몰렸다. 한국 선수 가운데는 기성용(25ㆍ스완지시티)과 손흥민(22ㆍ레버쿠젠)만 제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지성(33ㆍ은퇴) 만한 리더가 없다는 사실이 뼈아팠고, 박주영(29) 지동원(23ㆍ도르트문트) 등 해외파 공격수들은 경쟁력을 증명하지 못했다. 국내 리그에서 뛰는 김신욱(26ㆍ울산)과 이근호(29ㆍ상주)가 그나마 가능성을 보인 점이 위안거리였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