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시리즈 Story #16. '국회의 두뇌' 63년史 들여다보기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보경 기자, 김민영 기자, 주상돈 기자] 나는 전쟁통에 태어났다. 6ㆍ25 전쟁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던 시절이다. 2대 국회 윤택중 의원은 "나라가 곤란할수록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이 중요하다"며 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 한 칸의 도서실이라도 설립하고 국내외 신문이라도 입수해 국회의원의 사명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 결의안이 발의됐고 모두들 그 취지에 공감했다. 국회가 전선을 따라 옮겨 다니던 중 1952년 2월20일 국회의 임시 거처였던 경남도청 무덕전에서 나는 장서 3600여권을 품에 안고 태어났다. 직원은 고작 1명이었다. 그 후 서울 태평로를 거쳐 여의도로 옮겨온 국회의사당과의 동거는 계속됐다. 처음에 사람들은 국회 본관 지하 1층에서 책을 읽어야 했다. 자료들은 건물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1988년이 돼서야 지금의 새 둥지가 생겼다. 지금은 지하 1층~지상 5층의 총면적 2만8110㎡(8500평)짜리의 번듯한 건물에서 300여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드디어 '국회도서관'이라는 내 이름에 걸맞은 집이 마련된 것이다.
초반에 나는 비싼 몸이었다. 국회의원과 입법보좌진들만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다 점차 문턱이 낮아졌다. 도서관장의 인정을 받으면 나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대부분 국회 출입기자들이었다. 1961년에는 공무원, 학자, 국군장교 등에게도 개방했다. 그해 더욱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나이와 직업에 상관없이 일반 국민 모두가 나를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공공도서관이 부족해 시민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 40석이었던 열람실 좌석을 300석으로 늘렸다. 하지만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용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오전 8시가 되기도 전에 전 좌석이 꽉 들어찼다. 언제 날지 모르는 빈자리를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 도서관이 아니라 '공부방'이 돼버렸다. 방침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듬해 3월 일반인은 대학생 이상까지만 허락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평균 2800명이 매일 나를 찾아온다. 지난해에만 약 93만명이 발도장을 찍었다. 사람들은 열람실에 앉아 다양한 책을 읽거나, 원하는 분야의 논문, 보고서를 보기도 한다. 외부 책은 반입이 안 되지만, 노트북을 가져와 공부를 하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의 장서량은 517만권(5월 기준)에 달한다. 서울대도서관(약 462만권ㆍ한국교육학술정보원)보다는 조금 많고 국립중앙도서관(955만권)에 비하면 적은 양이다. 그러나 미국 의회도서관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미국 의회도서관의 장서량은 약 1억5800만권으로 나보다 30배 넘게 많다. 이곳은 세계의 모든 지식정보 자원을 수집한다는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주눅 들 필요는 없다. 나를 온라인으로 만나면 검색할 수 있는 정보는 무궁무진해진다. 국회전자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검색되는 원문 데이터베이스는 국내 최대 규모다. 석ㆍ박사 학위논문부터 국회 회의록, 학술기사, 연구보고서 등의 자료를 다 합하면 총 1억5700만페이지에 달한다. 덕분에 전 세계에서 하루 4만8000여명의 이용자가 접속해 내가 가진 자료를 검색한다. 국내 주요 연구기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의 자료도 이곳에서 한꺼번에 찾아볼 수 있다.
참, 내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를 잊을 뻔했다. 본래 나는 국회의원 300명의 의정 활동을 돕기 위해 지어진 도서관이다. 공공도서관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내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책을 가져가서 읽는 '관외 대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국회의원과 보좌진, 국회 직원들로 한정된다. 지난해 국회의원실에서 대출한 책은 총 2만6407권으로 전체 관외대출 건수의 24%를 차지한다. 그 외에는 국회 직원들이 빌려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나는 입법, 정책심의 등을 할 때 의원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제공하는 의회ㆍ법률정보 회답 서비스도 제공한다. 2011년에 3208건, 2012년 3386건, 2013년 4118건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밖에도 건물 5층에는 국회의원을 위한 전용열람실이 마련돼 있고 의원회관 2층에도 80평 규모의 의원열람실이 있다. 지난해 의원열람실을 이용한 의원 및 보좌진은 누적해서 2154명에 달했다. 하루 6명꼴로 이용한 것이다.
도서관 열람실에 먼저 출근도장 찍는 김춘진 의원
지난해 독서왕은 258권 빌린 백재현 의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ㆍ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의 첫 구절을 실행에 옮기는 국회의원들이 있다. 지난해 국회도서관의 자료와 서비스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의원들이다. 여의도를 대표하는 학구파라 할 수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도서관과 깊은 인연을 맺은 사연을 들어봤다.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찾은 단골손님은 김춘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었다. 그는 의원열람실을 대표하는 '터줏대감'으로 통했다. 의원열람실에서 근무한 A씨는 김 의원에 대해 "오전에 의원실보다 열람실에 먼저 들르며 출근도장을 찍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김 의원이 틈날 때마다 오곤 해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단 30분이라도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다 가더라"고 말했다. 또한 김 의원은 열람실 한편에 마련된 언론 인터뷰 장소도 자주 사용하는 등 국회도서관을 십분 활용했다.
김 의원에 이어 도서관을 직접 자주 찾은 김을동 새누리당 의원은 일본 정부의 군국주의ㆍ우경화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학구열을 불태웠다. 김 의원 측은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주변국과의 국제 공조를 다지기 위해 역사와 관련된 해외 보고서와 간행물을 참고했다"고 전했다.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은 '독서왕(대출 최다)'에 꼽혔다. 지난해 도서관에서 총 258권을 빌려 단행본 대출 건수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쌓인 숙제가 많았다고 했다. 백 의원실 측은 "지난해 총 5개의 상임위원회를 맡다 보니 자연스레 도서관 책을 많이 대출했다"고 전했다. 백 의원은 19대 국회 전반기 동안 안전행정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등 5개 상임위에서 활동했다.
특히 백 의원은 여가위 여성 의원들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책과 씨름하며 고군분투했다. 이 관계자는 "주로 청소년 관련 정책의 연구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책과 논문을 이용했다"며 "물론 백 의원이 모든 책을 다 읽지는 못하니 책을 A4 한 장으로 요약 정리해서 보여주는 건 보좌진의 업무"라고 말했다.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국회전자도서관에 가장 많이 접속한 의원이다. 즉 도서관에 직접 가지 않고 PC, 모바일 등을 통해 똑똑하게 자료를 활용한 '스마트족'이다. 판사 출신인 그는 평소 글쓰기를 좋아해 언론매체 등에 활발하게 글을 기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홍 의원 측은 "주로 칼럼 소재를 얻기 위해 도서관이 보유한 다양한 분야의 학위논문을 참고했다"며 "검색어만 입력하면 원하는 자료를 금방 찾을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도서관 책을 가장 많이 빌린 의원 2위로 선정됐다. 시각장애 2급인 최 의원이 도서관 책을 자주 빌린 연유는 무엇일까. 최 의원 측은 "의원실에 마련된 독서 확대기를 이용해 최 의원이 직접 읽기도 하고, 원하는 부분을 발췌해 구두로 알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나 연금, 건강보험 등 복지 분야 책을 주로 이용했다.
최 의원 측은 "점자책이나 음성서비스가 지원되는 책이 도서관에 아직 충분하지 않다"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는 국회도서관이 선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인문서적은 보좌진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최 의원이 직접 읽고 싶어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워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의원들은 국회도서관의 의원전용 책 배달 서비스를 한목소리로 칭찬했다. 국회도서관은 클릭 한 번이면 각 의원실로 책을 배달해주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의원실에서 인터넷으로 책을 대출 신청하면 도서관 직원이 의원실에 직접 배달해주는 것이다. 하루 최대 5번씩 책이 든 카트를 밀며 건물 2층부터 10층까지 각 층에 분포한 의원실에 일일이 전달해주고 있다. 의원의 입법활동 지원이라는 설립 취지에 맞춰 국회도서관이 내놓은 히트 상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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