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습격

낱말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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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다'와 '이즘'이 만난 이 말은 제법 대중의 입말이 되었다. 귀차니즘을 생활화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귀차니스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뉴스는 그런데 귀차니스트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냥 대책없이 게을러터진 게 아니라 삶에서 불필요한 동작과 수고들을 생략하고 핵심과 필수 만을 뽑아내서 이용하며 살아가는 바쁜 실용주의자.' 그러면서 손을 대지 않고도 쓰레기를 비울 수 있는 쓰레기통을 보여주고, 음식들을 조리하는 편리한 기구들을 보여주면서 이런 것들이 귀차니스트들이 즐겨 사용하는 물건이란다. 나는 웃었다. 그럼 귀차니즘이 웰빙이게? 저 뉴스야 말로 취재에 대한 귀차니즘이 엿보인다.


이런 용어가 생겨나는 것은 편리와 불황이라는 두 환경이 이종교배하면서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물론 뉴스가 말하는 저 생력화(省力化)를 그렇게 부르는 것도 아주 틀렸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엔 인터넷이라는 괴물과 인간이 맞붙어있는 환경이 숨어있다. 인터넷은 인간을 그 안에 몰입시키고 다른 일들을 귀찮게 만든다. 밥 먹는 일부터 시작해서 화장실 가는 일까지 이 몰입을 방해하는 '불편'들이다. 이 불편들을 해결해나가려는 노력이 귀차니즘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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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불황이라는 현실도 끼어든다. 인터넷에 몰입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 일이 직업과 소득과 관련 있어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전혀 돈이 안되는 일일 뿐 아니라 대개는 돈 버리고 시간과 몸 버리는 그런 '탕진'의 장이다. 이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인터넷에 실속없이 몰입하고 있을까. 시간이 무진장 있으면서 할 일은 없는 백수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도 몰입은 필요하고 그것이 불안과 괴로움을 잊게 해준다. 귀차니즘은 이들에게도 유용한 이데올로기다. 그들의 몰입은 아편이나 알콜과도 같이 필사적이고 집요한 것이어서 삶의 다른 일들은 최소화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삶의 다른 일들을 그럴 듯하게 유지해나가는 일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pc 모니터와 침대나 이불, 그리고 밥상과 심지어 요강까지도 지근거리에 유지하고 있는 그 삶의 '원형질'주의가 바로 귀차니즘의 중요한 양상이다.


귀차니즘에는 문명에 대한 스트레스와 중독과 고독과 자기 방기가 숨어있다. 거기엔 무력화되어 있는 인간과 희망없는 삶이 엄동설한을 견디는 앙상한 나무들처럼 '최소한의 조건'으로 무위도식하고 있다. 귀차니즘은 편리에 대한 조롱이며 첨단에 대한 항의이기도 하다. 귀차니즘은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미덕이 있지만 그 단순화는 반드시 좋은 '실질'을 위해 쓰여질 에너지를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또다른 무모한 탕진을 위한 한쪽의 절약일 뿐이다. 귀차니즘에는 오용되고 있는 문명이 숨어있다. 뉴스는 이걸 지나가 버린다. 눈에 보이는 만큼만 읊어버리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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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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