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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해마다 손편지 써주던 아들아, 내일은 너없는 어버이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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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엄마에 다정다감하던 막내 끝내 주검으로

팽목항을 찾은 한 추모객이 국화꽃을 놓고 갔다.

팽목항을 찾은 한 추모객이 국화꽃을 놓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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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전남)=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어버이날이면 손편지를 써서 선물로 주곤 하던 막내아들. 그러나 그 막내아들은 어버이날을 앞두고 차갑게 식은 몸으로 어머니에게 돌아왔다.

지난 4일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만난 김기훈(17ㆍ가명)군의 어머니 이모(가명)씨의 눈빛은 초점이 없었다. 심장병 때문에 하루 세 번 꼬박 약을 챙겨먹어야 하지만 그마저도 잊고 산다. 막내아들 기훈이가 아직 차디찬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16일 김군이 수학여행 가던 날, 어머니 이씨는 아들에게 용돈을 넉넉히 주지 못했다. 남편과 사별한 뒤 이씨는 삼남매를 정부보조금을 받아 키웠다. 심장병 수술을 받은 전력 때문에 일을 못해 형편은 더 나빠졌다.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아픈 어머니는 수학여행을 떠나던 아들에게 사이다를 얼렸다가 주었다. 그것이 기훈이와의 마지막이었다.
김군은 다정다감한 아들이었다. 엄마를 닮아 눈이 부리부리하고 180cm의 큰 키의 아들. 어머니가 심장수술을 받은 데 이어 3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집 앞에만 나가도 '어디 다녀오겠다'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어버이날도 평소에 용돈이 적어 사줄 형편이 안되니깐 편지를 써서 줬어요. 작년에도 녀석이 '엄마 오래오래 건강하라'며 손편지를 써서 줬는데…"

그랬던 아들이 연락이 끊긴지 20여일 가까이 되고 있다. 이씨는 "남편도 기훈이 갓 두돌 지났을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집안에 남자라곤 기훈이뿐인데 자식마저 사고로 떠나보냈다"며 눈가를 연신 훔쳤다.

김군의 누나들은 사고 초기 기훈이의 사고 소식을 어머니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심장병을 앓는 어머니가 충격으로 잘못될까봐서다. 어머니 대신 큰딸(22)과 작은딸(20)이 진도체육관으로 내려가 동생을 찾아다녔다. "체육관에 일주일 있는 동안 라면국물하고 커피로 버텼어요. 딸들이 '엄마, 내려와도 똑같아'라고 못내려오게 하더라고요."
참다못한 이씨는 일주일 뒤 진도체육관으로 내려갔다. 오전 9시에 눈을 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팽목항으로 달려가는 생활이 계속됐다. "딸들이 불편한 기색을 조금이라도 내비치면 제가 그래요. 기훈이는 아직 추운 바다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저렇게 하고 있는데. 그리고 집에 가면 우리가 언제 돈 내고 이런거 사먹어 봤니. 집에선 엄두도 못 낼 것을 여기서 먹는다고."

5일엔 기훈이 이모와 외삼촌이 팽목항에 왔다. "순천에서 동생들이 왔어요. 지금이라도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5일에도 기훈이는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했다. 팽목항에는 '기훈아, 이모가 보고싶어. 얼른 돌아와'라는 노란 리본이 나부꼈다.

이날 오후 기훈이 어머니는 '7반 학생이 떠올랐다'는 실종자 아버지의 말을 전해듣고 급히 팽목항을 찾았다. 어머니는 '키 175~180, 남학생 추정'이라는 안내판을 한참 들여다봤다. 김군의 어머니는 신발도 갈아신지 못한 채 체육관에서 신던 슬리퍼 차림이었다.

6일 오전 다시 찾은 진도체육관, 기훈이 어머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또다른 실종자 가족인 박모씨는 "어제 새벽 한시에 DNA 결과 아들임을 최종 확인하고 올라갔다"고 전했다. 기훈이 어머니가 머물던 자리에는 슬리퍼 한짝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막내아들은 어버이날을 앞두고 그렇게 기다리던 어머니에게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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