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면 내려와야 한다. 느리게 걷는 삶도 편하다

[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 산에서 많이 배운다. 배우려고 오른 건 아니다. 다니다 보니 깨우친 게 있다는 얘기다. '산에 오르면 내려와야 한다'가 깨우침 1호다. 당연한 얘기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 도가 텃다고 비웃거나, 정신이 나갔나 의심한다. 그러지 마라. 쓰임새도 있으니까.


지난해 여름에 회사동료들과 '불수도북'을 했다.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을 한 번에 타는 등산이다. '북도수불'로 코스를 약간 바꿨다. 도봉산을 내려오다 해질녘에 길을 잃었다. 갈림길에서 의견이 갈린다. 후배는 옆길로, 나는 아래로. 어느 길이 옳은지 모른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무조건 아래로 가자고 설득했다. 정확한 길을 찾으러 옆길로 갔다가 산에 갇힐 수 있다. 조금 뒤 하산하는 일행과 만났다. '산은 내려와야 한다'는 상식이 통했다.

내려와야 할 때 잘 내려와야 한다.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는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줄을 서 기다려 올라간다. 내려오지 않으면 올라가지 못한다. 사람이 많아 조금은 위험하다. 정상에 올라가 숨 한번 크게 쉬고 , 물 한 잔 마신 뒤 바로 내려온다. 오르고 내리는 사람이 서로 길을 비켜주며 격려한다. 안전을 위해서다. 가끔 시비가 붙는데 사고위험이 높아진다.


입사하면 언젠가 은퇴해야 하는 법
아름답게 하산하는법 고민해 봤나

관료들을 마피아에 빗대 '관피아'로 지탄하는 여론이 많다. 세월호 비극의 공범으로 해수부 관료와 업계가 유착한 '해양 마피아(해피아)'를 지목한다. 은퇴하는 신중년들이 관피아의 고리다. 정년 전에 정상에서 내려가며 후배들에게 자리를 비켜준다. 대가로 산하기관장이나 협회 임원으로 간다. 현직, 전직, 업계의 유착고리가 참화를 키웠다.


관료조직 내부의 분위기는 아주 다르다. "1급이 된 뒤 언제든 옷 벗을 각오가 돼있어요." 신하기관장으로 내정된 관료가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다. "나가줘서 고맙죠." 선후배들의 얘기다. 낙하산 타고 나가는 사람에게 고마워한다. 안나가면 후배들의 눈총을 받는다. "관료가 최고인 시절에 고시에 붙었는데, 이제는 끝물"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끝물' 25년전, 신문사에 입사했을 무렵부터 계속 듣는 얘기다. 관료도, 선배기자들도 그 때 "끝물"이라고 얘기했다. 계속 끝물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좋은 얘기다. 특권이 사라졌다는 얘기, 적어도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부정적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질기게 남아있다는 뜻이다. 국민들은 부정적인 부문에 주목하고 분노한다.


국민여론이 들끓고 대통령, 국회, 언론까지 다 들고 나섰으니 많이 바뀔 것이다. 제도만 바뀐다고 끝이 아니다. 고위 공무원 중 극히 일부라도 변했으면 좋겠다. 지난해 김능환 전 대법관이 부인의 편의점에서 일한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국민들이 환호했다. 전관예우를 받으면서 떼돈을 버는 고관대작들과 다른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후 로펌에 들어가 해프닝으로 끝났다.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 같은 소리를 해야겠다. 비웃어도 좋다. 물정 모르게 행동해서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살아내는 그런 공직자를 보고싶다. 낙하산타고 날아봤자 인생이 30~40년 이상 남게 된다. 그뒤에는 뭘 할 건가. 나라에서 받은 것을 봉사를 통해 돌려줄 순 없을까. 꿈인가. 은퇴한 뒤 권력과 연줄에 의존해서는 오래 버티기 힘든 세상이 오고 있다. 언제까지 자리다툼만 할 것인가. 물정 모르는 돌연변이가 필요하다. 진화는 돌연변이가 준 축복이다.


공무원뿐 아니다. 힘 있는 많은 사람이 "허울뿐이지 가진 게 없고 미래가 불안하다"고 생각한다. 자기보다 훨씬 부자인 친구, 이웃과 비교한다. 은퇴에 임박해서는 돈과 권력을 더 탐한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있는 놈이 더해"라는 한탄이 그래서 나온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는 '계영배(戒盈杯)'가 나온다. 술이 7할 이상 차면 다 쏟아지는 술잔이다. '가득참'을 경계한다. 거상 임상옥은 계영배로 과욕을 경계했다. 신중년들은 마음속에 계영배를 심어야 할 나이다. 조급하지 말자. 살 날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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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거나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불편해도 참아내는 법, 필요한 게 있어도 없이 사는 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유럽의 한 수도원에 있는 문구란다. '욕심 갈무리'가 해법이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 많다.


나는 요즘 동반자가 없을 때에는 등산보다는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 편이다.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집을 나선다. 물과 김밥만 준비해도 충분하다. 연두색 잎새와 형형색색의 꽃을 즐긴다. 등산보다 훨씬 여유롭다. 물정 모르는 동반자와 둘래길을 걷고 싶다.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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