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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완소남의 숨은 의미(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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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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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재담꾼들이 만들어내는 신조어들은 기발한 게 많지만, ‘완소남’의 경우는 아니다 싶다. 그러나 기발함이나 재치 만이 새로운 말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아닌 듯 하다. 완소남은 형편없는 ‘두문자(頭文字) 축약어’이지만, 그 말이 필요한 환경 속에 착 들어와 앉았다.

우선 그 의미를 살펴보자. 완소남은 ‘완전 소중한 남자’라는 의미로 쓰인다. 소중한 남자라는 의미는 알겠는데 그 앞에 붙은 ‘완전’이란 말은 어색하다. ‘완전’이 ‘소중하다’에 걸리는지 ‘남자’에 걸리는지 애매하기도 하다. 어디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소중함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완전’은 별 뜻이 없다. ‘완전한 남자’라는 의미라면 ‘완전’이 놓인 위치가 적절하지 않다. 아마도 완소남은 ‘몹시 소중한 남자’와 ‘완전하고 소중한 남자’라는 의미를 두루뭉수리하게 다 껴안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완전’이란 말을 구어로 이해할 때는 조금 달라진다. ‘완’자에 힘을 주고 ‘전’자를 뒤에 살짝 붙이는 십대들의 강조어법은, 새롭게 떠오르는 입말이다. 어색한 문장구조이지만 별로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까닭은 바로, 이 구어체 표현이 주는 싱싱한 매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완소남’이란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누구였을까. ‘완소녀’라는 말이 나중에 나온 걸 보면, 그 조어자(造語者)는 여자이며, 그중에서도 어린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회에서 어린 여성은 이제 그냥 소녀가 아니다. 갈 수록 사회적 파워가 강해지고 있는 ‘여성 신드롬’의 방향타(方向舵)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남자의 이상형은 ‘강한 남자’에서 살짝 비켜나 있다는 것이 ‘완소남’ 문제의 핵심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꽃미남’이라고 부르는 걸, 어린 여성들은 ‘완소남’이라고 부른다. 꽃미남에는 40대 50대 아줌마의 느끼한 시선이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완소남에는 그런 추파가 없다. 사실 완소남이나 꽃미남은 동일한 대상이다. 주로 여성을 가리키던 객관적 상관물이었던 ‘꽃’이 남자에게 붙여질 때의 신선한 충격을 기억한다. 남자가 꽃이 되고, 여자가 나비가 되는 드라마틱한 역전(逆轉)이 이 사회의 중요한 풍속도이다.
완소남에 들어있는 ‘소중한’이란 말에는, 남자를 인식하는 여성의 스키마가 엿보인다. 남자는, 여자들이 장식용으로 소중하게 간직하는 반지나 귀걸이, 혹은 자동차나 옷처럼 소중한 ‘물건’이다. 꽃과 액세서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소유할 수 있다. 그것이 소중한 건, 내 것이기 때문이고 또 시장(市場)에 내놨을 때 아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박혜미의 남편 배추머리 정준하는 생김새와 상관없이 ‘완소남’이다. 능력있는 여성은 굳이 능력 갖춘 남자를 원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보호해주고 싶은 모성애를 자극할 수 있는 남자가 더 좋을 수도 있다. 박혜미에게 배추머리 이 남자는 완전 소중하다. 소중하다는 감정은 주관적인 것이고, 소중하기 때문에 그 남자가 완전하게 느껴지는 일도 여자의 자유다.

꽃미남에도 그렇지만 완소남이란 말에는, 정작 남자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남자의 외형적인 인상들은 짐작이 가지만, 여자의 시선과 느낌이 더 강조되고 있다. 요컨대 꽃미남이나 완소남은 ‘여자의 남자’다. 짐작컨대 여자에게 아주 잘해주는, 싹싹하고 부지런하고 순진하면서도 유머감각 있고 희생정신이 뛰어난 남자일 가능성이 크다. 왜 그런가. 여자의 남자이기 때문이다.

고집 세고, 싸움 잘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고, 판단력이 놀랍고, 지적으로 뛰어나고, 출세에 열정적이고, 변화에 대한 열망이 강한 남자라면, 완소남이 되기는 글렀다. 여자들을 피곤하게 하는 옛날 방식의 카리스마들은 완소남 리스트에서 제외다. 완소남이 입에 오르내리는 사회는, 남자들이 귀여워지고 수줍어지고 약해지는 사회다. 여자들이 남자들을 먹여살리는, 신모계사회의 징후가, 저 ‘완소남’이란 얄궂은 조어 속에 숨어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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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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