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을 비탄에 잠기게 한 세월호 침몰 사고 언저리에도 페이퍼컴퍼니가 있다. 흔히 페이퍼컴퍼니하면 세금이 없는 조세회피처를 떠올리는데 특이하게도 세월호 주인은 조세회피처인 홍콩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페이퍼컴퍼니를 적극 이용했다. 그 동기가 무엇인지는 앞으로 검찰 수사를 지켜볼 일이다.
범죄에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아예 못 만들게 하면 될 것 아닌가. 국민의 법 감정과는 달리 법적으로만 보면 이를 규제할 근거가 희박하다. 2001년 상법을 개정하면서 주식회사를 설립할 때 '발기인 3인 이상이 필요하다'는 규정을 없애 단 한명의 발기인으로도 주식회사의 설립이 가능해졌다. 더구나 2009년에는 '주식회사의 자본은 5000만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삭제됐다. 그 결과 혼자서 100만원만 갖고도 회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왜 이렇게 회사 설립이 쉬워졌는가.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정책의 영향이라고 본다.
회사 설립을 보다 쉽게 해 창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본래 입법 취지와 달리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현행 상법에는 명문 규정이 없다. 주식회사의 경우 상법은 소유(대주주)와 경영(대표이사)을 분리하여 경영책임을 주주에게 물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의 경우 운영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대표이사는 구속될지언정 이 회사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에 대해서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 유가족이 구상권 등을 법적으로는 청구할 수 없다.
상법과 달리 세법은 과점주주(50%+1주 이상 소유한 자)에 대해 2차 납세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회사가 세금을 내지 못할 경우 과점주주가 대신 납부하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감지한 유병언 전 회장 일가는 과점주주를 회피하기 위해 여러 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뒀는지도 모른다.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과점주주를 회피한 사건에 대해 2012년 대법원은 매우 전향적인 결정(2008두 8499 전원합의체 판결)을 했다. 거래의 중간 단계에 있는 의심스러운 페이퍼컴퍼니 개입 거래(A→페이퍼컴퍼니→B)에 대해 법 형식대로 인정해온 종전 기준(법적 실질)과 달리 론스타 등 외국 투기자본에 대해선 페이퍼컴퍼니를 부인해 실제 거래(A→B)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이른바 '경제적 실질'의 잣대로 페이퍼컴퍼니의 법적 효과를 부인한 것이다.
이를 상법에도 적용할 수는 없을까. 적어도 탈법 행위를 저지르기 위해 만든 페이퍼컴퍼니는 법적으로 아무런 방패막이가 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길도 될 것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