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부터 3월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에서 전시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한쪽에서는 빨갱이라고, 한쪽에서는 변절자라고 손가락질했지만 저는 유쾌하게 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박노해 시인(57)의 시집 '노동의 새벽'이 세상에 나온 지 올해로 30년이 됐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로 시작하는 그의 시는 당시 군부독재 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이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결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시인은 사형을 구형받았고 무기수로 7년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세상에 나온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특별사면을 통해서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시집이 아니라 사진이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라오스, 티베트 등 아시아 전역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찍은 7만컷의 흑백필름 사진 중 120여점의 작품이 현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걸려있다. 지도에도 없는 마을들을 유랑하면서 그는 "희망의 종자가 가장 풍부하게 남겨진 순수한 땅"으로서의 아시아를 발견했다고 한다. 아시아 토박이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매번 동네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아낙네들이 주는 차를 마시면서 친해졌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정직한 절망에서 길어올린 희망찾기의 보고서"라고 설명했다.
전시회의 제목은 '다른 길'이다. 그가 바라본 현 시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롭지만 가장 인간성이 쇠약해진 시대, 가장 지식이 많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시대,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많은 시대지만 가장 무기력한 시대, 가장 편리한 첨단 기계 시대지만 일자리마저 사라지는 시대, 그리고 가장 수명이 길어진 시대지만 가장 외롭고 불안한 노후의 시대"이다. 박노해 시인은 "지금은 무엇보다 새로운 사상과 삶의 비전이 필요한 때"라며 "진정한 나를 위해 살 것,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자급자족하며 살 것,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 것"을 강조한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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