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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새벽' 박노해 "미래는 주술에 불과하다. 오직 오늘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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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부터 3월3일까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지하1층)에서 사진전

'노동의 새벽' 박노해 "미래는 주술에 불과하다. 오직 오늘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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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노동의 새벽'이 출간된 지 30년이 되는 올해, 박노해 시인이 오랜 침묵을 깨고 아시아 유랑길에서 찍은 흑백사진을 들고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라오스 등 지난 3년간 아시아 전역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관객들을 맞는다. 시인은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작은 시인의 시시한 사진전"이라고 소개한다.

박노해 사진전은 5일부터 3월3일까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지하1층)에서 열린다. 전시회 제목을 '다른 길'로 정한 것은 "지금은 무엇보다 새로운 사상과 삶의 비전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좌와 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보수와 진보 등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수평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고의 방식이나 패러다임이 현재는 정점에 달했으며, 이런 방식의 삶의 생활양식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진전에는 박노해 시인이 아시아 지역을 유랑하면서 찍은 7만컷의 흑백필름 사진 중 엄선된 120여점의 작품이 걸려있다. 사진전을 기획한 이기명 한국매그넘에이전트 대표는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진정성을 시인에게 발견했다. 박 시인은 카메라의 줌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대상에게 다가가며, 역광을 이용한 '절제된 빛'을 사용할 줄 안다. 무엇보다 시를 뜰 때의 서정성이 그의 사진에서도 나타난다"고 소개했다.

박노해 시인은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발표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그의 시는 당시 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불구하고 100만부 이상이 발간되기도 했다. 이후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을 주도해, 결국 사형을 구형 받고 무기수가 됐다. 7년간의 옥살이 끝에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특별 사면됐다. 하지만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과 정치의 길을 거부한 그는 이후 15년 동안 지구촌 곳곳을 떠돌아다녔다.

당시의 상황을 두고 시인은 말한다. "27살, 첫 시집을 발표하고 나서 바로 그 길로 수배와 감옥생활 15년을 살았다.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도 스스로 침묵하며, 지구시대 유랑자의 길을 걸어온 지도 15년이 됐다. 슬프게도 나는 길을 잃었다. 정직하게 절망해야 했고, 나 자신을 체제의 경계 밖으로 스스로 추방시켜서, 거슬러 올라가며 길을 찾아야 했다. 기나긴 유랑 길이었다. 오래된 만년필과 낡은 흑백필름카메라를 들고 내가 가닿을 수 있는 지상의 높고 깊은 마을의 사람들 속을 걸었다. 대부분 지도에도 없는 마을들이었다."
아침 안개 속의 라오스 여인 Pakmong, Luang Prabang, Laos, 2011.

아침 안개 속의 라오스 여인 Pakmong, Luang Prabang, Lao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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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랑길에서 건진 사진들은 "정직한 절망에서 길어올린 희망찾기의 보고서"이다. 티베트, 파키스탄, 인도, 라오스 ,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6개국 곳곳을 누비면서 그 곳의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면서 몸을 부대꼈다. 찾아간 동네마다 반가워하며 차를 주는 사람들 때문에 하루에 20잔 이상의 차를 마신 적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발견한 아시아의 특징은 '순환', '순수', '순명'이다. "서구는 발전을 직선으로 인식하지만, 아시아의 사유방식은 '순환'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믿는 아시아는 동그라미로 사유한다."

쫓기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한 박자 쉴 것을 권유한다. 노후대비, 보험 등 미래를 걱정하는 일로 오늘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하루치의 삶을 선물받았다. 이 에너지를 온전히 쓰지 못하면, 그 잉여에너지가 폭력이 되고 우울이 된다. 또 내면과 영혼의 에너지를 총체적으로 쓰지 않고, 앉아서 머리만 쓰기 때문에 늘 피로감에 시달린다. 미래는 일종의 주술이다. 오직 오늘만 있을 뿐이다. 미래에 대한 준비가 아니라 오늘을 위한 삶이 필요하다."

사진전에 못 다 내건 작품들은 책으로 담았다. 사진에세이 '다른 길'에서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인물의 속 깊은 사연이 단 10줄의 시처럼 녹아져있다. 박노해 시인은 "하루에 6시간이 넘게 만년필로 사연을 정리했다"고 말한다. 책의 인쇄와 사진전 등의 수익금은 사진 속 주인공들인 파키스탄의 아이들, 버마의 농부들, 인도네시아 아체 주민들을 위해 쓰인다. 이효리, 윤도현, 황정민 등의 홍보영상도 홈페이지(anotherway.kr)와 페이스북(facebook.com/anotherway2014)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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