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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주주 자본주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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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의욕적 행보를 보이던 이석채 KT 회장이 최근 전격 사퇴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도 내년 3월 주총 때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표면적으론 두 사람 모두 새 정부와는 무관한 이유로 물러났다. 이 회장의 경우 시민단체가 KT의 부동산 헐값 매각, 신사업 손실 등에 대해 배임 혐의로 고발하면서 검찰의 압박이 거세지자 사퇴했고, 정 회장은 "글로벌 무한경쟁 속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대기업 회장의 사퇴가 정권교체와 무관하다고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두 사람 모두 이명박(MB) 정부 핵심 측근인사들과 가까웠고 당시 정권교체와 함께 그전 회장들의 전격 사퇴로 빈자리에 갔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KT의 경우 노무현 정부 때 회장이 된 남중수 회장이 MB정부 때 뇌물죄 혐의로 구속되면서 이 회장 체제가 들어섰다. 포스코 역시 김대중 정부 때는 김만제 회장, 노무현 정부 때는 유상부 회장, 이명박 정부 때는 이구택 회장이 각각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대한민국의 통신과 철강을 대표하는 두 대기업 그룹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가 바뀌는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사실상 인사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두 대기업에 정부 지분이 단 한 주도 없다는 점이다. KT의 대주주는 외국인 주주가 44%, 국민연금공단 8.65%, 일본 NTT도코모 5.46% 등이다. 포스코 역시 소액주주가 60%, 뉴욕멜론은행 15%, 국민연금공단 6.14% 등으로 정부 지분은 없다. 그뿐인가? 최고위층 인사에 정부 입김이 강하게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금융기관들 역시 우리금융지주를 제외하곤 공식적인 정부 지분은 없다. 정부가 지분만 팔았을 뿐 비공식적으로 인사권은 보유하고 있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권교체 5년마다 벌어지는 인사혼란 때문에 글로벌 경제계와 금융시장은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CEO 교체는 단순한 인사문제가 아니다. 회장이 바뀌면 그 아래 사장단과 임원들이 대거 교체되고 당연히 전임 회장이나 사장, 임원들이 추진해온 사업이나 경영방침, 프로젝트가 전면 재검토되거나 취소되는 극심한 혼란으로 이어진다. 사업이 취소되면 그동안 들어간 비용은 모조리 매몰비용이 되고 만다. 정권교체와 함께 사라지는 짧은 임기의 CEO가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 충분히 연구 검토해 책임있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현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핵심은 주주들이다. 그런데 이처럼 정권교체기마다 CEO 리스크가 커지고 기업경영이 부실해져서 주주들에게 큰 손해가 돌아가는 데도 주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주주인 국민연금과 펀드들은 침묵하고 있고 소액주주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인사 논란이 불거진 이번 기회에 주주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마련하기 바란다.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이 기업경영과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시작된 주주 행동주의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지 않지만 현재와 같은 무주공산 체제보다는 적어도 나을 것이다. 대주주가 없는 회사나 금융기관을 특정 CEO가 사(私)기업처럼 독식할 우려에 대해서는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대리주주권을 행사하고 경영 파행을 견제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비공식적이고 전면적인 인사권 개입보다 훨씬 낫다. 만약 이번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이전 정권의 전례가 답습된다면 이는 대한민국 자본주의와 지배구조에 심각한 후퇴가 될 것이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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