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서 뛰는 '10번타자 리더십'…KS 경제 MVP는 박용만 선수
[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지난달 31일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가 열린 대구 야구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두산 베어스 팀을 응원하기 위해 대구까지 찾아 눈길을 끌었다. 그룹 회장이 대구 원정길에 동반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박 회장은 이날 경기장에서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경기 시작 20분쯤 전에 박정원 구단주와 함께 덕아웃으로 내려가 선수단을 격려한 것이다. 평소 그는 야구장을 찾아도 일반석에서 응원만 할 뿐 선수단을 직접 찾은 적은 없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박 회장은 "오늘 이 자리에 승리만을 바라고 온 것은 아니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칫 선수들에게 부담감을 줄 수 있다는 배려감에서다.
그러면서 "요즘 많은 사람들로부터 두산 베어스의 경기를 보며 용기를 얻는다는 메시지를 받고 있다. 어려운 경제, 취업난 등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두산의 선수들이 끝까지 싸우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고 한다"고 격려했다. 그는 "오늘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공 하나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의미 있다. 나 역시 끝까지 그들의 기대를 안고 응원할 테니 우리 선수들 모두 끝까지 파이팅 하자"고 격려했다. 박 회장의 여유가 묻어난다.
2013년 프로야구를 결산하는 한국시리즈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진정한 의미의 승자는 두산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두산이 많은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르느라 체력이 떨어져 삼성이 손쉽게 우승을 할 것이라는 야구 전문가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깼기 때문이다. 정규시즌에서 4위였던 두산은 넥센과 준플레이오프, LG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올라 정규시즌 1위인 삼성을 턱밑까지 위협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다면 두산 야구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전문가들은 두산 야구의 힘이 사람을 중시하는 두산그룹 특유의 기업 문화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다.
두산이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내수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재 중심 경영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캠페인 문구처럼 두산은 사람의 성장을 통해 사업 성장을 이끌고 다시 사업 성장을 통해 사람의 성장을 유도한다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이와 관련, 박 회장은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고 성장시킬 수만 있다면 업종이 바뀌고 시장이 변해도 유연하게 적응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두산 야구단은 이른바 '화수분 야구'로 유명하다. 이승엽 같은 슈퍼스타는 없지만 끊임없이 성실하고 실력 있는 선수들이 배출된다는 의미에서다. 사람을 중시하는 두산의 기업 문화와 일맥상통한다.
두산의 화수분 야구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비용 대비 막대한 효율을 자랑한다. 두산 베어스 선수 연봉 총액은 55억1700만원으로, 9개 구단 중 3위이다. 반면 삼성 라이온스 선수 연봉 총액은 67억1200만원으로 1위. 투자가 야구단 성적과 직결된다는 속설을 깬 셈이다.
아울러 박 회장 경영철학인 두산웨이의 요체 중 하나인 '따뜻한 성과주의'도 두산 야구단 선전의 한 배경이 되고 있다. 박 회장은 최근 두산그룹 채용설명회에서 "진정한 혁신은 실패한 직원들에게 얼마든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데서 나온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생들에게 두산의 기업 문화를 소개하며 "조직의 구성원들이 상하 관계에서 오는 벽을 느끼지 않고 언제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두산그룹에서는 과거에 시행했던 징계 제도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친밀한 스킨십 경영도 한몫하고 있다. 박 회장은 평소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직원들이나 야구팬들과 직접 소통한다.
대구에서 열린 6, 7차전 잠실야구장을 무료개방, 전광판 응원전을 벌이는 두산의 이벤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의 SNS에 한 야구팬이 잠실구장에서 응원하고 싶다고 하자, 박 회장은 "건의해 보겠습니다"는 답변을 남겼다. 이후 두산은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잠실야구장을 무료로 개방한다는 이벤트를 발표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의 야구 사랑은 스포츠단을 단지 기업의 홍보나 사회공헌활동을 위한 도구로 한정 짓거나 소유물로 여기는 프로구단 오너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며 "두산그룹의 기업 문화나 총수 리더십이 야구단에도 영향을 끼치면서 기업이나 야구단 모두 동반 상승하는 시너지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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