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철학의 알파와 오메가?
도진순 창원대 교수, ‘8.15 백범 특강’서 백범 말기 빈민구제와 아이들 교육 지원 나선 것이 백범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강조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8.15 해방 68주년을 앞두고 백범 김구 선생의 말기 삶을 조명하는 특강이 이뤄져 눈길을 끌었다.
13일 오후 4시 성동구청 3층 대강당. 실내 온도 35℃를 넘나들 정도로 살인적인 폭염속에서도 300여 주민들이 백범 김구 특강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이날 ‘8.15특강 백범 김구’-백범과 월인천강?을 주제로 진행했다.
‘주해 백범일지’ ‘쉽게 읽는 백범일지’ 등을 저술한 백범 전문가인 도 교수는 강연 서두에 백범(白凡)은 백정범부(白丁凡夫)의 줄임말로 ‘백정같이 비천한 서민’을 의미한다“고 백범 호부터 설명했다.
이에 따라 백범은 자기 출신인 서민과 천민을 상징하는 것으로 지극히 평범한 것을 지향하는 김구 선생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이런 백범이 우리 현대사의 큰 인물로 남은 것은 무엇때문일까.
도 교수는 강화도조약으로 우리나라가 개항하게 된 1876년 7월11일 황해도 해주 텃골에서 태어난 김구 선생의 출생과 살아온 이력을 설명해 갔다. 입신양명을 위해 과거 시험에 도전했다 실패하고 동학군에 들어갔다가 내부 다툼으로 패배한 사연. 그 후 안중근 의사 부친과 만남, 그리고 근대적 계몽운동을 하다 서대문감옥에 투옥돼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운 얘기 등을 풀어갔다.
이 후 백범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몸담아 27년간 조국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다 광복과 함께 고국에 돌아왔다.
도 교수는 “백범은 백범일지에서 1945년11월23일 꿈에 그리던 조국에 돌아와 ‘착륙 즉시 눈앞에 보이는 두 가지 감격이 있으니 기쁨이 그 하나요, 슬픔도 그 하나다. 책보를 메고 길에 줄지어 돌아가는 학생의 활발 명랑한 기상을 보니 우리 민족 장래가 유망시 됐다. 이 것이 기쁨의 하나다. 반면 차창으로 내다보이는 동포들이 사는 가옥을 보니 빈틈없이 이어져 집이 땅 같이 낮게 붙어 있었다. 이는 동포들의 생활 수준이 저만치 저열하다는 것을 짐작한 거서이 유감의 하나였다’”고 말했다.
도 교수는 “조국과 첫 대면에서부터 시작된 이런 관심과 배려는 해방정국의 분주함 속에서도 지속돼 백범 인생 최후기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대목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백범의 사상이 해방 이후 중국 일본 북조선 등 각지에서 조국으로 돌아온 식민 및 전쟁유민(전재민)들의 주거 문제와 교육문제 해결하는데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특히 백범은 아들 결혼 축의금과 어머니 장례식 부의금을 모아 성동구 금호동과 마포구 염리동에 백범학원과 전재민주택(백범주택)을 만들어 주었다.
도 교수는 “당시 저변의 인간들에게 따뜻한 주거를 주고 가난의 대물림을 주지 않기 위해 교육을 시켜주기 위한 백범의 따뜻한 인간애가 드러난다”고 풀이했다.
그는 특히 독립운동가 , 정치인 백범으로서 면모 보다는 말년 빈민 구제와 무산 아동 교육 지원에 나선 자세를 보인 것이 오늘날까지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게 한다며 특강을 마쳤다.
성동구(구청장 고재득)는 오는 오전 29일 오전 11시 금호동 백범학원과 백범주택 터에서 백범학원 기념비 제막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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