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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불량식품과 불량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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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문제로 남북간의 긴장이 전례없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그러나 대한민국 '사회안보'의 최전선은 휴전선이 아닌 후방의 위험지대로 옮겨진 듯하다. 휴전선 비무장지대 이상의 전운이 감돌고 있는 그곳은 바로 동네 문구점 주변이니, 이곳에서는 지금 '철통안보'를 위한 '불량식품'과의 일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건 '쫀드기'의 싸움이며 '막대사탕'과의 결전이며 '달고나'와의 전투인데, 이 결연한 성전(聖戰)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인 검찰과 경찰이 동원돼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불량식품을 말살하라'는 지상과제를 받들어 경찰대 학생들은 음악회까지 열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는 가히 새롭게 부활한 새마을운동이며, 현대판 국민계몽운동이며, 21세기의 신종 범국민 부흥회라고 해야 할 듯하다. 21세기에 지난 세기의 국민궐기대회를 보는 것처럼 그로테스크하며 스펙터클한 풍경이지만 아이들을 불량식품의 위협으로부터 구출하겠다는 그 비상한 각오에 우리는 우선 더없이 숙연해지며 그 결연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궁금증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데, 그건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불량식품이냐는 소박한 의문이다. 그런데 듣자 하니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는' 식품이면 그것이 곧 불량식품이라고 정의를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준엄하게 공표한 이 불량식품에 대한 정의를 듣는 순간 '불손'하게도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든다. 불안감을 주는 식품이라고? 이것이 우리의 공권력이 단호히 추방하려고 하는 가공할 적의 정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 누가 불안감을 줄 수 있다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그 누가 '불량'의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혹시 이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한 불량에 대한 정의가 이 정부 출범 이후 귀가 닳도록 얘기하고 있는 '창조경제'의 한 변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최소한 블랙 유머의 한 창조적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불량식품과의 전쟁 자체를 탓할 건 없다. 그러나 하나의 정부가 진짜 정부이고자 한다면 힘을 기울여야 할 진짜 중요한 일은 최소한 쫀드기를 발본색원하는 것 그 너머에 있을 듯하다. 만약 그걸 모른다면 우리가 몰아내야 할 진짜 '불량'은 문구점의 300원짜리 달고나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불량한 발상, 불량한 정책, 불량한 공권력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추방해야 할 진짜 불량일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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