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키운다는 '뿌리'산업, A부터 Z까지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스위스 로렉스(시계), 독일 헹켈(칼 등 주방용품), 이탈리아 콜나고(자전거), 영국 파커(만년필) 등….
이 같은 세계적인 명품은 장인정신이 녹아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오랜 전통과 기술력을 갖춘 장인의 기술은 그동안 제조업과의 융ㆍ복합을 통해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어 냈다.
이런 명품이 모두 튼튼한 '뿌리산업'의 토대 위에서 탄생했다면?
여기에 국내 소식 하나 더. 지난 16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우리은행은 뿌리기술 전문 기업을 위한 2500억원의 특별자금을 마련해 낮은 이율로 융자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세계적 명품 탄생의 밑거름이 되고,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 지원을 약속하는, 이름도 생소한 뿌리산업은 무엇일까.
◆뿌리산업, 그것이 알고 싶다=뿌리산업은 말 그대로 나무의 뿌리와 같은 성격의 산업을 말한다. 나무의 뿌리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최종 제품에 내재돼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명명됐다. 역사적으로 보면 뿌리산업은 청동기시대 무기류ㆍ장신구 제작을 위한 주조에서 시작했다.
뿌리산업은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등 '공정기술'을 활용해 사업을 영위하는 모든 업종을 뜻한다.
일례로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인 산업인 자동차ㆍ조선ㆍIT 등의 제조 과정에서 공정기술로 이용되는데, 이는 최종 제품의 품질 경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높은 자동차ㆍ조선ㆍIT 등 국내 주력 산업의 성공도 주조ㆍ금형ㆍ열처리 등 뿌리산업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뿌리산업은 크게 제품의 형상 제조공정(주조ㆍ금형ㆍ용접ㆍ소성가공)과 소재에 특수기능 부여공정(열처리ㆍ표면처리) 등 2가지로 구분된다.
◆해외의 뿌리산업 동향은?=한국의 뿌리산업과 가장 유사한 형태는 일본의 '모노쯔쿠리'다. 모노쯔쿠리산업은 제조업의 근간이 되고 숙련기술이 필요한 주조ㆍ단조ㆍ금형ㆍ용접ㆍ열처리ㆍ도금ㆍ임베디드SWㆍ플라스틱성형ㆍ절삭가공 등 20개 업종을 포함한다. 일본은 규격화된 대량 생산 제조업 중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모노쯔쿠리 기반 기술의 고도화와 인재 육성, 글로벌 브랜드화 등 3대 전략을 추진 중이다.
제조업 강국 독일은 뿌리기술 등 17대 첨단기술 분야를 지원하는 '하이테크 전략'을 2006년 수립했다. 하이테크 지원금 60억유로 중 2억5000만유로를 2006~2009년 뿌리기술에 투입했다.
미국에서는 국가 차원의 제조업 육성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제조업 부양을 위한 프레임웍을 2009년 발표한 데 이어 제조업 증강법을 시행했다. 특히 제조업 기술 확장 파트너십(MEP)을 구축해 중소기업 7648개사에 지원을 했다.
중국은 금형 업체 2만개사를 기반으로 30여개의 금형집적화 단지를 조성했다. 특히 2009년부터 '10대 산업 진흥 조치'를 발표해 자동차와 철강 등 주력 산업의 기반이 되는 혁신형 뿌리산업 중소기업에 대한 육성을 본격화 했다.
◆우리나라 뿌리산업 현황은?=뿌리산업의 중요도와 달리 우리나라 뿌리산업의 현실은 처참한 수준이다.
전체 뿌리기업 중 99.9%는 중소기업이다. 대기업은 없고, 중견기업이 17개사 정도다. 76.2%의 기업은 10인 미만의 소공인이다. 1인당 부가가치(연간)는 8600만원으로 국내 제조업(1억6500만원)의 52% 수준에 불과하고, 2008년 이후 정체 상태다.
금형ㆍ용접은 선진국에 근접한 수준이나 주조ㆍ소성가공ㆍ표면처리ㆍ열처리 등 4개 업종은 절대열위에 있다. 영업이익률은 7~8% 수준으로 타 산업과 비교 시 상대적으로 낮다.
그렇다고 시장 규모가 작은 것은 아니다.
지난 2010년 기준 뿌리산업의 국내 시장은 87조4000억원 상당으로 형성돼 있다. 뿌리산업은 2만5000여개 뿌리기업과 기업 내부에서 뿌리기술을 적용하는 완성품 업체로 구성된다. 여기서 뿌리기업은 뿌리기술을 활용해 매출액의 50% 이상을 올리는 기업을 가리킨다.
뿌리기업은 대부분 2~4차 협력사에 분포돼 있다. 또 62.6%가 수도권에 있다. 뿌리기업 종사자 수는 2010년 기준 약 26만명이다. 전체 제조업 종사자(341만명)의 7.6%를 차지한다.
뿌리산업은 수요산업이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이라는 점에서 국가적으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산업이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뿌리기술 전문 기업으로 지정된 기업들이 뿌리산업의 국가대표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길 바란다"며 "향후 정부도 뿌리기업들이 중견기업과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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