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벤처기업인의 악전고투 창업기
벤처창업 서류 장벽 '꾼'들만 배불린다..생소한 행정 법률 투성이 허점 노려..가짜 계획서 등으로 유혹 횡령 난무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우리나라 창업 지원 제도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최근 대기업을 나와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한 30대 벤처인 A씨의 한탄이다. 남들은 젊은 나이에 제법 번듯한 기업을 차렸다고 부러워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의 창업 준비 기간은 그에게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특히 부족한 자금력 때문에 정부의 지원 제도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한계와 문제점을 직접 보고 느꼈다.
창업을 위해 정부의 벤처창업지원 공모전에 응모한 것이 '천신만고'의 시작이었다. 공무원들이 작성하라고 준 수십 장의 서류는 그에게 악몽이었다. 생소한 행정ㆍ법률 용어 투성이인 공모전 접수 서류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그 조차도 이해하는 데 2~3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한자 사전과 행정 용어를 찾아가며 어렵사리 서류를 꾸미고 발표회를 거쳐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후에는 너무 엄격한 규제가 장벽으로 다가왔다. 제출해야 하는 각종 증빙 서류가 산더미 같았다. 그는 "작은 것 하나 하나에도 증빙 서류를 요구하는 바람에 정작 마케팅이나 중요한 업무에 집중할 시간이 없다"며 "물론 규제나 감시도 필요하지만 실리콘 벨리 등 선진국들의 벤처 지원 정책은 네거티브 대신 포지티브한 방식, 즉 인센티브와 촉진ㆍ육성 위주로 펼쳐져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가 놀란 것은 '창업꾼'들의 존재다. 공모전 접수처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그는 우연히 '창업꾼'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 귀를 기울여 보니 이들은 주로 전국의 지자체, 관련 기구ㆍ단체, 정부 등이 시행하는 창업 관련 공모전ㆍ지원사업 마다 떼로 몰려다니며 무차별적으로 서류를 접수, 정부 지원금을 타내거나 싼 이자로 빌린 후 돈을 빼돌리는 수법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알아보니 실제 인터넷에는 '창업대행'이라는 이름 하에 아이디어도 없이 기존의 여러 서류를 짜집기해 창업계획서를 작성해주는 대행업체들도 수두룩했다. 대행업체들은 서류 한 건을 작성해 주는 데 100만원 안팎을 받고, 공모전에서 채택돼 지원금을 타내면 그중 5% 안팎의 수수료를 또 챙기는 식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창업꾼들은 이들 대행업체들을 이용해 일반인이 하기 어려운 화려한 사업신청서를 만들어 제출, 해당 공모전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끈다. 또 창업꾼들은 일단 창업을 한 후 허위 증빙 서류를 작성해 돈을 빼돌리기 때문에 담당 공무원ㆍ기관들의 감사나 단속에도 절대 걸리지 않는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벤처 창업을 단순히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실적'으로만 여기는 공무원들의 태도도 문제였다. 정부가 벤처 창업을 지원하는 것은 일단 일자리 창출의 측면도 있지만, 지식ㆍ정보ㆍIT 등 최첨단 산업 분야에서 제대로 된 강소기업들을 키워내 '굴뚝'' 위주의 기존 산업 구조를 개편, 미래의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창업한 기업이 제대로 성장하도록 보육해주는 데 중점을 두기 보다는 일단 일자리를 늘리는 '창업'에만 관심을 둘 뿐 이후에는 '나몰라라'였다.
공무원들은 심지어 벤처 지원 공모전에 입상한 이들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더 창출하려면 상금을 줄여 입상자를 늘려야 한다"며'상금 나눠먹기'를 사실상 강요하기도 했다. 그도 1개 입상 기업당 5000만원을 지원해주기로 한 모 공모전에 도전했다가 공무원들로부터 "상금을 줄여 입상자를 늘릴 테니 양해해달라"는 통보를 받고 울며 겨자 먹기로 동의해 준 적이 있다. 덕분에 그는 당초 지원금 액수를 예상해 짜놓은 사업 계획의 일부를 축소ㆍ변경해야 했다.
A씨는 "창업꾼들은 단순히 정부지원제도의 헛점을 이용해 국고를 낭비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건전한 벤처창업인들에 대한 지원을 방해해 '창조경제'의 싹을 죽이는 사람들"이라며 "창업꾼들을 철저히 가려내 처벌하는 한편 될성 부른 벤처에 대해선 적극적이고 포지티브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 창조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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