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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메신저]십자군을 무찌른 사라센의 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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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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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잘 꾸며진 아웃도어웨어 매장에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 한 분이 들어섰다.

판매원은 두리번거리며 서 있는 이 할머니께 무언가를 주고 내보내야 하나 어쩌나, 판단이 서지 않은 상태로 할머니께 다가갔다.
그때 할머니가 꼬깃꼬깃한 종이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거기엔 유행하고 있는 패딩 점퍼 이름과 가격이 적혀 있었다.

어렵게 한 푼씩 모은 돈을 들고, 안 입으면 왕따당한다며, 손자 녀석이 그렇게도 입고 싶어 하는 그 옷을 사러 오신 것이었다.

알바생의 푸념이라는 포털 사이트의 글도 화제였다. 한 고객의 엽기 행각을 소개한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온 한 남학생이 47만원짜리 패딩을 골랐다.
값을 본 어머니가 놀라 “싼 것을 선택하라”고 하자 “거지인 줄 안다. 조용히 하라”라는 거친 말을 내뱉으며 그 점퍼를 사갔다는 것이다.

유행이 도를 넘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던 그 브랜드의 패딩 옷이 이제는 청소년이 아닌 그들의 부모들이 입는다고 했다.

유행이어서라기보다 유행의 한 고비를 넘긴, 힘겹게 산 그 옷을 자녀들이 입지 않으니 아까워서 대물림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패딩이 유행에서 밀려난 것은 아니다. 상·하의는 물론 머플러, 장갑, 그리고 신발에까지, 패딩 제품은 여전히 추운 이 겨울을 덥히고 있다.

패딩(padding)이란 옷을 만들 때, 솜이나 오리털 같은 소재를 넣어 누비는 바느질 기법이나 그렇게 만든 옷을 말한다.

패딩이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추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곳곳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지배적인 의견은 중국, 티베트 등이다. 중국의 경우 B.C.1000년쯤에 패딩을 입은 흔적이 있다고도 한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가까웠던 우리나라도 동예시대(B.C.300~A.D.300쯤)의 기록에 누비로 보이는 옷이 있어 그 사용역사가 오래됐음을 알 수 있다.

“십자군이 사라센에게 진 것은 패딩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라센이 비단으로 만든 가벼운 패딩 옷 위에 사슬로 된 갑옷을 입고 싸울 때, 십자군은 망치로 두들겨 만든 두껍고 무거운 철제 갑옷을 입고 창칼은 휘둘러야 했다.

움직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패딩은 그렇게 십자군전쟁을 거쳐 12세기쯤 유럽으로 전해졌다.

갑옷 속에 흉부를 보호하기 위해 입던 패딩 옷은 점차 상의와 하의로 발전했다.

14세기 중엽부터 평상복으로 일반화돼 17세기 중반기까지 장장 300여년 동안 서구 남성들의 옷이 됐다.

여성들도 패딩을 다양하게 이용했으나, 18~19세기를 거치며 속옷이나 웨딩드레스 등의 특수복에 사용되는 정도였고,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패딩은 점차 시선 밖으로 벗어난 듯했다.

패딩이 다시 세계인의 관심을 끈 것은 1970년대 중국이 핑퐁외교로 개방을 시작하면서, 1979년 서양의 디자이너(피에르가르뎅)가 중국에 가 최초의 패션쇼를 했다.

그때 두둑이 솜을 넣어 입고 다니는 중국인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게 현대판 패딩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 패딩이 한동안 특수 브랜드를 중심으로 비싼 값을 자랑하면서 이런저런 폐해까지 만들더니, 요즘엔 부나 계층의 상징이 아닌, 가볍고 따뜻한 옷으로 폭넓게 사용되는 듯한 분위기다. 다행이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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