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베트남과 관련한 몇 가지 기억이 있다. 제3부두에서 수송선을 타고 ‘월남’(남베트남)으로 가는 맹호·백마 부대 군인 아저씨들. 글쓴이는 친구들과 함께 이들을 환송했다. 맹호부대로 월남에 갔다 돌아온 작은아버지로부터 ‘파커 만년필’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스포츠와 관련한 기억도 꽤 있다. 1960~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제법 큰 국제 축구대회였던 메르데카배대회(말레이시아), 킹스컵(태국) 등에서 월남과 자주 부딪혔다. 경기는 라디오 또는 TV를 통해 중계됐다. 1970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월남을 98-8로 꺾었다. 우승국 일본이 인도를 152-28로 누르는 등 각 나라의 경기력 차이가 큰 시절이었지만 대회 45경기에서 10득점 이하로 묶인 건 월남이 유일했다.
요즘은 외신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동남아시아경기대회(SEA게임)란 게 있다. 지역 국제종합경기대회인데 1959년 태국 방콕에서 제1회 대회가 열린 이래로 월남은 오랜 기간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한창이었던 까닭. 월남은 하노이와 호치민(옛 사이공)에서 분산해 주최한 2003년 대회에서 처음으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2005년과 2007년, 지난해 대회에선 모두 3위에 올라 기존 강호였던 태국, 인도네시아와 함께 이 지역 스포츠 3강을 형성하고 있다.
이후에도 올림픽에 계속 출전한 베트남은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태권도 여자 57kg급의 트란 히우 능안이 자국 사상 첫 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1992년 수교 이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한국군은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 때 남베트남 지역에 주둔해 태권도를 전파했었다. 베트남은 2008년 베이징 대회 역도 남자 56kg급에서 호앙 안 투안이 은메달을 들어 올려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베트남은 지난 8월 런던 올림픽에서 육상, 배드민턴, 펜싱, 체조, 유도, 조정, 사격, 수영, 태권도, 역도, 레슬링 등 11개 종목에 18명의 선수를 내보냈다. 경제력이 급성장해 출전 종목이 많아졌지만 메달은 수확하지 못했다. 물론 전반적인 경기력은 크게 향상됐다. 사격 남자 권총 50m에서 호앙 수안 빈이 4위, 역도 남자 56kg급에서 트란 르 꾸오 트안이 4위를 차지하는 등 선전했다. 빈은 본선에서 563점으로 한국의 진종오(562점)보다 한 단계 높은 4위로 결선에 오르기도 했다. 트안은 용상에선 2위였으나 인상에서 6위로 처져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지난 9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배구연맹컵 여자배구대회 8강전에서 런던 올림픽 4강국인 한국은 베트남에 2-3으로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013년 월드 그랑프리 출전권 획득은 수포로 돌아갔다. 베트남은 조별 리그에서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일본을 3-2로 잡기도 했다. 준결승에서 우승국인 태국에 0-3으로 져 결승에 오르진 못했지만 급성장하는 베트남 스포츠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대회 결과였다.
베트남은 2019년 제18회 하계 아시아경기대회를 하노이에서 연다. 동남아시아 지역 나라로는 태국(1966년·1970년·1978년·1998년)에 이어 두 번째. 지역 경쟁자인 인도네시아(수라바야)를 제쳤다. 통일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에 한때 총부리를 겨눴던 한국이 수백명의 선수단을 이끌고 나선다고 하니 금석지감이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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