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주간지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지난 90년대 중반 소련 붕괴 이후 채무승계와 함께 지급보증을 약속했던 러시아 정부가 채권자들의 상환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경제연구소의 보리스 케이페츠 국채문제전문가는 "구소련 붕괴 후 얼마 뒤 카자흐스탄 등에서는 강제로 채권을 상각하는 조치를 단행했지만 러시아는 그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옛소련 부채 규모는 모든 것을 단숨에 무너뜨릴 정도로 어마어마하며, 이는 지난 1990년대에 다 털어버렸어야 할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옛소련 국채의 상환을 일단 2015년까지 유예한 상태지만 채권자들의 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처음 문제가 된 것은 푸틴 집권 1기인 2000년대 초반이었지만 그때는 러시아가 국제유가 급등으로 흑자를 내던 때라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후폭풍으로 전세계 경제가 내리막길에 있는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이미 연기금의 적자 누적으로 러시아 정부재정은 상당한 부담을 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지역 관리들과 만난 자리에서 "옛소련 시절 부채를 당장 상환해 버리면 군인·의사·교사들에게 지급할 재원이 완전히 바닥나게 된다"며 고민을 토로했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문제를 국제적으로 쟁점화했다. 최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인권재판소는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유리 로바노프 노인의 제소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로바노프 노인이 소유한 1982년 발행 옛소련 국채의 상환 의무에 따라 연금의 140배인 3만7150유로(약4만6497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채권을 보유한 러시아인들의 법정소송이 줄을 이었다.
러시아는 2010년 해외시장에서 55억달러 규모 국채를 발행하며 국제 자본시장에 복귀했다. 아시아지역 외환위기가 터진 1998년 국가부도(모라토리엄)를 선언한 지 12년만이었다. 부도 선언 1년 전인 1997년 러시아 정부는 프랑스가 보유한 제정러시아 시대 국채 4억달러 규모에 대해 99%의 헤어컷(채무탕감)을 받아낸 적이 있다. 오사코프스키 이코노미스트는 "당시 선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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