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교훈을 얻는다면 이 혼돈의 시대에 좀 더 현명하게 살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모든 일엔 대가가 따른다", 그래서 "공짜 점심이란 있을 수 없다"는 교훈 말이다.
경제 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일전에 김석동 금융위원장에게 소위 '서민금융'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다. "서민 금융, 취지는 좋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은 좀 문제 있는 것 아닙니까?" 김 위원장은 답은 이랬다. "일단 금융이란 말이 들어가면 시장기능이 살아있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위기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서민들의 삶을 정부가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말끝을 흐리는 김 위원장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최근 금융 정책의 방점은 서민금융이다.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권도 대선을 앞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주말 연체기록이 있는 이도 새희망홀씨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대출조건을 일부 완화한 것이다. 새희망홀씨대출은 미소금융, 햇살론과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서민금융상품이다.
금융에서의 시장 기능이란 신용도가 좋으면 낮은 금리에, 신용도가 좋지 않으면 높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서민'이라는 정책적 판단이 개입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다. 서민금융 정책이 필요없다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몇 가지 부작용을 침소봉대해 서민금융 정책 전체를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서민 금융에도 원칙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원칙은 시장 기능이다.
일견 정부가 보증해주는 서민금융은 모두가 행복한 정책처럼 보인다. 신용이 낮은 이는 돈을 낮은 금리로 빌려서 좋고(때에 따라선 안 갚아도 되니 더욱 좋고), 정부는 서민한테 인심 쓰고 표 얻어서 좋고, 은행들은 정부가 보증해주니 돈 떼일 일 없어서 좋고. 하지만 이것은 변형된 폭탄 돌리기다. 사회 전체적인 모럴 해저드(moral hazardㆍ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보증을 하고 나서는 순간, 돈을 빌리는 이들은 "당연히 안 갚아도 되는 돈"으로 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들은 "안 받아도 그만인 돈"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얘기다.
한번 사회적으로 학습된 모럴 해저드는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다.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좋은 취지의 서민금융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보다 정교한 설계(하드웨어)는 물론 제대로 된 창구 지도(소프트웨어)가 선행돼야 한다. 모두가 행복한 정책이 아니라 모두가 불행한 정책이 되선 곤란하다. 그 부담은 다음 정권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지게 된다.
이의철 기자 char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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