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는 지적재산권으로 보호할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분야를 넘나드는 기술의 융합과 제품 사이클의 초단기화 등으로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제품화하기도 어렵고, 그 제품에 대해 상당기간 지적재산권을 누리기가 쉽지 않다. 지적재산권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음악 산업도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냅스터와 같은 무료 음악 사이트가 등장했다가 음반업체와의 법적 마찰을 빚으며 스러져 갔지만 이후 스티브 잡스는 음반사업자 및 뮤지션들을 모두 설득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곡당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추었지만 시장을 확대함으로서 윈윈하는 결과를 얻었다. 지적재산권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높은 가격을 받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일깨워주었다.
반면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좀 다른 시각을 보인다. 애플이 그토록 집착하는 '디자인 지적재산권'에 대해 시각의 변화를 보여준다. 혁신이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전문가의 언급과 함께 애플 역시 그 전에 있었던 제품을 토대로 아이폰을 만들어낸 것이라는 얘기다. '지적재산권이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필요악'이라는 기존 시각과 달리 최근에는 '지적재산권이 혁신을 방해하는 불필요악'이라는 의견도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삼성과 애플이 재판에서 어떤 결과를 얻을지는 모르겠으나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계속 다투는 것은 둘 다에 '잃는 게임'이라는 분석이다.
사실 두 기업의 관계는 기존의 프레임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단지 경쟁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음에도 또한 서로에게 매우 의존적이다. 삼성은 애플 없이, 애플은 삼성 없이 현재의 경쟁력과 성장을 계속할 수 없는 관계다. 즉 서로 싸우기보다는 더 나은 제품을 위해 경쟁과 협력(co-petition)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지적재산권의 적용도, 모방의 개념도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 새로운 경영의 프레임이 필요한 시대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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